입법학회 신년학술대회 격려사 전문

입법학계의 나아갈 방향

 

최대권 [서울대 명예교수, 입법학회 초대회장]

 

황금 돼지해를 시작하는 금년 입법학회의 첫 세미나에 모이신 입법학회 회원 여러분 및 대학원생‧학부생을 비롯한 참석자 여러분들의 오늘 모임을 경축드립니다. 나아가 이 모임이 한 단계라도 입법학 도약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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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공동체가 직면하는 중요 관심사는 그 정치공동체의 생존(survival)과 개선‧개량(betterment)이라 할 수 있다. 국방 등 안보에서는 생존의 문제가 정치공동체의 핵심 화두라면 입법에서는 개선‧개량이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정치공동체의 개선‧개량이 목표인 입법은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최선의 입법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이 목표를 지향하기 위해서도 그러하지만, 입법은 법을 제정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법 자체의 속성 때문에라도, 입법은 합리적(rational)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합리적이지 아니한 법은 법이 아니라 사람의 자의(恣意)의 행사에 지나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합리성에는 상위의 가치‧목표나 헌법규범에 적합하냐의 문제들을 따지는 가치합리성과 달성하려는 목표 달성에 얼마나 효과적(effective)이냐 들이는 비용에 비해 얼마나 효율적(efficient)이냐를 따지는 목적 합리성을 포함한다. 합리성이 곧 정당성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정당성을 지닌 주장으로 합리성을 갖추지 아니한 주장이 있을 수 없다고 하는 의미에서 합리성은 정당성 주장의 개연성을 높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어떻게 하면 좋은 입법 즉 합리적인 입법을 행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입법학의 실천적 과제라고 한다면 이 입법학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필요하거나 밀접하게 관련되었다고 여러분들의 입법학적 상상력이 커버하는 어떠한 주제라도 모두 입법학의 과제가 될 수 있다. 그러한 만큼 예컨대 정부형태, 의회제도, 입법절차, 위원회제도와 입법보좌기구를 포함하는 기구 및 장치, 국회의원·입법보좌 인력을 포함하여 입법에 임하는 사람들의 의식과 교육 및 훈련의 문제까지도 입법학의 과제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또 최근의 한 청와대감찰반원 및 한 재정경제부 직원의 내부자 고발로 촉발된 공익신고자보호의 문제가 입법학의 훌륭한 과제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비밀주의는 열린사회 즉 자유민주주의의 적이며 예컨대 군사기밀과 같이 정치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기밀이 아닌 한 내부자 고발(즉 공익신고)은 자유민주주의를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입법학의 과제가 될 수 있는 사항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 무엇이 문제가 되고 있는가 하는 우리가 가지는 문제의식이 결국은 우리가 논의하려는 입법학담론의 대상과 범위를 선별케 만들 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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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와 산업화로 상징되는 지난 반세기의 우리나라의 사회변화는 그 변화의 속도와 폭에 있어서 우리 5천년 역사상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혁명적인 사회변화가 우리나라 법원(法源) 마당에 가져온 제정법 즉 국회입법의 위치 내지 중요성의 증대라는 변화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민법제1조는 법원으로 법률, 법률이 없으면 관습법, 관습법도 없으면 조리(條理)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원리가 적용되기에 적합한, 사회변화의 속도가 느렸던 호랑이가 담배 먹던 시절은 우리 곁에서 떠나 간지는 꽤 되었다고 판단된다. 사실 우리가 겪은 사회변화의 폭은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영역에 걸치지 아니한 부분이 없으며, 변화의 속도 또한 대단히 급속해서 예컨대 관습법이 쉽게 생길법한 친족상속법 적용 영역에서 조차 관습법이 성장할 여지가 오늘날 거의 없으며, 그 당연한 결과로 관습법에 따라 법원(法院)이 판결을 내리는 일은 우리에게 전무하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와 함께 실제의 판결에서 조리법이 적용 내지 작용될 여지 또한 거의 없다. 왜냐하면 당사자의 이해의 대립이나 충돌의 강도가 몹시 심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법적용 내지 집행이나 법 판단 영역에서 성문법에 대한 의존도는 오늘날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사회변화가 오늘날 우리에게 이뤄졌다고 판단된다. 요컨대 누구한테 책잡히려고 성문법적 근거 없이 법 집행이나 판단을 오늘날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사정과 함께 가는 현상으로 특정 사건이나 사항에만 적용되는 특별법의 제정이 유행이라고 하리만큼 많고 다양하다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유행하는 특정의 한정된 사건이나 사항의 처리를 규정하기 위해서 제정하는 부지기수의 특별법(대표적 예로 5‧18, 4‧3사건, 세월호 등)은 엄청난 법학적, 헌법학적 문제점을 제기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특별법은 입법이란 그 적용이 일반적 내지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헌법의 대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법률로 집행(행정권)이나 법적용 내지 법 판단(사법권)을 대신하는, 삼권분립의 원칙에 어긋나는 법률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러한 특별법들은 한편 민법, 상법, 국가배상법, (군)형법 등등의 일반법의 존재이유를 질문하게 만든다. 이러한 일반법은 어떠한 때 또는 어떠한 사건에만 적용되는 것이며, 어떠한 때 또는 어떠한 사건에는 특별법의 제정이 요구되며 또 제정되는 것이냐 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아니면 특별법은 조직되고 동원된 정치력의 반영이 아니냐의 의문도 제기된다. 법원(法源) 가운데서 국회입법인 법률의 비중이 법원(法源)의 전부라고 할 정도로 압도적이라는 점과 이곳에서 역시 국회입법인 특별법의 비중이 높다는 점은 별개의 문제다. 이곳에서 문제로 삼는 것은 국회입법 가운데 정당성이 결여되는 위헌적 특별법 숫자의 증가가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아무튼 위에서 지적한 바 있는 입법의 위상의 변화 및 그 역할의 중요성의 증대는 변호사 업무, 특히 로펌 업무에도 투영된다고 생각한다. 종래에 변호사의 업무는 입법‧행정‧사법의 법과정(legal process)의 끝에 놓인 사법과정에 단연 집중돼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입법업무의 비중이 점차 증대하리라고 예상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로펌가운데는 이러한 현상이 벌써 감지되고 있는 곳도 감지되리라 생각한다. 특히 기업체를 중심으로 해서 국민의 법전문가의 조력에 대한 필요성 내지 수요는 입법 조력에도 미치리라는 점은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사후적(즉 사법적)으로가 아니라 사전적으로 자기에게 유리한 법제정‧개정의 필요성을 느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각변동은 법학교육단계에서도 투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법학 커리큐럼 상의 예컨대 행정법이나 노동법 과목에서 진정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입법정책이지 해석론이 문제되는 비중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아가 지금 현재 입법학이 개설되어 있는 법과대학‧로스쿨의 숫자는 적지만 앞으로 법학교육과정 상 입법학이 개설되어야 하리라는 예측이나 당위성은 증대하리라 믿는다.

사실 전국적으로 최대 2000명으로 그 입학정원이 묶여있는 로스쿨체제는 전면적으로 개혁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현재의 로스쿨은 비판적으로 바라볼 때 종래의 판검사 훈련기관인 사법연수원체제를 대학이 대행하는 체제이지 그것이 어떻게 학문이 존재이유인 대학체제의 일부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강력하게 제기된다. 우선 로스쿨이 실은 대학이 인수‧운영하는 사법연수원체제의 대행체제라는 점은 로스쿨의 도입(제도 창설, 인가 등)부터 학생입학, 정원, 커리큐럼 등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운영체제에 대하여 가지는 법무부와 대법원의 권한이나 지위에서 살필 수 있다. 현재의 로스쿨이 어떻게 대학체제의 일부일 수 있는가? 대학이 로스쿨에 대하여 가지는 한정된 통제권에 비추어. 그리고 거의 전적으로 변호사시험 합격에 맞춰 현재 로스쿨에서 실제 행하고 있는 교육은 학문으로서의 법학을 저버린 판례위주의, 즉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가르치는, 시험준비교육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입법학을 포함한 균형 잡힌 법학교육은 현재의 로스쿨교육에서는 어렵게 되어 있으나 이것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와 함께 로스쿨 인가 및 입학정원 등은 대학에 개방되어야하며, 변호사시험, 행정시험, 소위 입법고시, 법원행정고시는 하나의 국가시험으로 통합되어 이 시험을 통하여 변호사자격을 가진 법률가로서 로스쿨졸업생들은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에 진출할 수 있도록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같이 입법학을 포함한 균형 잡힌 법학교육‧훈련을 받은 법률가 가운데서 입법전문가도 배출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러한 입법(제정법)의 위상의 변화 및 그 역할의 중요성의 증대는 입법학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온다고 판단된다. 그리고 이 도전은 사실은 입법학을 전공하는 학자 및 입법실무가들에 대한 도전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도전에 어떻게 대응할 것이냐, 이것이 여기 모인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말할 것도 없이 입법학의 폭을 넓히고 깊이를 심화시키는 것이 그 응답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입법학을 전공하거나 공부하는 학자의 폭을 넓히고 수를 늘리는 일, 무엇보다도 입법학전공의 대학원생, 특히 박사과정생의 양성에 열과 성을 배가하는 일이야말로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이러한 일에 우리의 지혜와 노력을 다하여 보자는 말로 오늘의 격려사를 마치고자 한다.

2019년 2월 23일

학술취재 : 논설위원 겸 부사장 이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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