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학회 신년학술대회 기조발제 A

입법학,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임종훈

홍익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1. 한국에서 입법학의 역사

우리나라에서 입법학이라는 주제로 논문이 등장한 것은 1980년대 초로 보인다. 그리고 국내에서 입법학을 강의하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학교에서 1980년대 중반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입법학이 우리나라에서 법학의 한 분야로 연구되고 강의되기 시작한지도 어느덧 30년 이상이 흘렀다.

한편 입법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으로 ‘한국입법학회’가 1994년 2월 창립되고, 한국입법학회에서 학회지인 ‘입법학연구’의 창간호가 발간된 것이 2000년 10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나라에서 입법학이 법학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지도 20년 가까이 지났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여러 법학전문대학원과 법과대학에서 입법학이 강좌로 개설되고,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가 이루어지고 있으나, 아직도 입법학의 주된 연구대상과 강의주제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글에서는 주로 대학에서 입법학 수업시간에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를 진행하고자 한다.

2. 입법학의 대상은 무엇인가?

입법학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은 입법학은 무엇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학문인가에 대한 질문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 사실이나, 양자의 질문에 대한 답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는 대학에서 입법학 수업 시간에 무엇을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서 먼저, 입법학의 대상에 관한 국내의 연구논문들을 살펴본 후, 외국에서는 입법학의 대상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를 알아 본 다음, 국내의 주요 대학에서 입법학 수업시간에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를 검토하기로 한다.

⑴ 입법학 수업시간에 무엇을 강의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의 출발점으로, 우선 입법학의 대상은 무엇인가에 관한 국내의 연구논문부터 소개하고자 한다. ‘입법학연구’ 창간호에 실린 분의 논문과 그 외에 다른 한편의 논문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우선, 최대권 교수님께서는 입법학의 대상을 “입법의 목적, 입법의 내용, 입법의 표현(또는 記述방법) 및 입법권한과 입법절차 등을 지배하는 헌법적인 원리ㆍ원칙을 포함하는 법학적 원리ㆍ원칙 등”으로 언급하셨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입법의 표현의 문제는 만들어진 입법의 의미를 밝히는 문제, 즉 법해석학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다. 이 말은 입법학이 법해석학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최대권 교수님께서 입법학을 기존의 법학과 비교하여, 기존의 법학이 ‘사후적ㆍ임상적 법학’인데 비하여, 입법학은 ‘사전적ㆍ예방적 법학’이라고 한 부분은 입법학의 성격을 적절하고 간결하게 규명했다고 하겠다. 또한 최 교수님은 입법학의 연구 대상으로 국회입법 외에 행정입법을 제시하셨다.

최대권 교수님이 제시한 입법학의 대상은 입법원칙, 입법과정, 법령해석 및 법제실무(입법기술로 표현되어 있다) 등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한편 한상희 교수께서는 “정치와 법치”의 “경계를 설정하고 상호 교통하게 하는 하나의 방법론적 틀”로서 입법학을 규정하면서, 앞으로 계속되는 연구 성과들이 이러한 입법학의 관심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면서 입법학의 연구 대상으로 입법이론의 정립(비례의 원칙ㆍ평등의 원칙 등 입법의 원칙뿐만 아니라, 입법으로 해결할 영역과 행정ㆍ사법으로 해결할 영역의 구분 등), 입법원칙과 입법정책의 문제(“입법정책의 결정과 그 구체화과정에서 입법원칙이 별다른 통제의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면서), 입법과정과 기술의 문제(입법과정과 입법기술 영역에서 민주성과 전문성의 확보방안에 관한 논의인데, 입법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의 참여를 논하는 ‘입법변론’의 문제도 포함한다.)를 들고 있다. 한상희 교수께서 제시한 입법학의 대상은 입법원칙, 입법정책의 문제, 입법과정 및 입법기술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인이 되신 박영도 박사께서는 기존의 법학을 개념법학적 법해석학으로 규정한 다음, 사회현상에 가장 바람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규범을 정립하기 위한 노력을 입법학의 영역으로 설정하면서 이를 “법의 제작학”이라고도 불렀다. 그러면서 입법학의 연구 대상 및 과제를 입법이론(내지 입법분석론), 입법정책, 입법의 기구와 절차, 입법기술 및 입법과정 등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박영도 박사는 입법학을 헌법학으로부터 상대적으로(‘상대적’이라는 표현이 특이하다) 독립한 새로운 법학의 특수한 일부분으로서 입법을 고유의 인식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상영 교수께서는 위에서 소개된 것들과 맥을 같이해서, 어떠한 원칙과 동기로(입법의 원칙과 동기), 누가(입법자 또는 입법기구), 어떠한 과정으로(입법과정), 어떠한 기술적 방법으로(입법 방법 또는 입법 기술) 법을 제정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답을 찾는 것이 입법학의 과제라고 보고 있다.

결국, 네 편의 논문에서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입법학의 대상은 입법원칙, 입법과정 및 입법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최대권 교수님은 이러한 내용 외에 법해석학을 추가하고 계시다.

⑵ 아직은 입법학의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답을 할 만큼 국내에서 충분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다면, 우리보다 먼저 입법학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시작한 외국에서는 입법학에서 무엇을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일본에서는 입법제도ㆍ입법과정ㆍ입법기술ㆍ입법정책 등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1960년대 내지 1970년대부터 입법학에 관하여 체계적 연구를 진행한 독일ㆍ오스트리아 및 스위스 등에서의 입법학 연구방향은 크게 이론적 영역과 실제적 영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론적 영역에는 입법이론, 법정책학적 논증 및 입법의 원칙에 대한 논의가 포함되며(입법이론과 입법의 원칙이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르겠음), 실제적 영역에는 입법과정론, 입법전략론, 입법기구론, 입법기술론, 입법방법론 등이 포함된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독일에서는 입법실무 분야와 활발한 협력연구를 거치며, 입법평가와 법령정비에 주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입법기술에 관한 논의보다는, 입법을 담당하는 의회와 입법과정에 대하여 연구를 하고, 실정법을 해석하는 방법론과 해석원칙에 관하여 연구하는 학문이 입법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입법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으로는 자유주의적 이익집단이론(interest group liberalism), 공공선택이론, 공화주의이론 등 다양한 접근방법이 제시되고 있다. 그리고 법안심의 과정에서 국회의원들의 역할에 대해서는 국회의원을 대리인(agent)으로 보는 입장과 기계적으로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고,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서 자신의 판단을 활용해야 하는 수탁자(trustee)로 보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또한 실정법 해석을 위한 접근방법으로는 입법자의 의도를 존중하는 이론(intentionalist theories), 법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이론(textualist theories) 및 법문과 문맥뿐만 아니라 입법이 추구하는 당위성 등을 함께 고려한 동태적 해석을 주장하는 이론(dynamic theories) 등이 제시되고 있다. 즉, 미국의 입법학은 입법과정에 대한 논의와 법령해석에 집중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속)

 

학술취재 : 논설위원 겸 부사장 이경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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