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위원 제도 폐지하고, 입법청문회 및 입법조사처 기능 활성화로 대체해야

가을맞이 입법분야 학술인터뷰 (1)

 

 

정재룡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지난 6월말 304개월간 근무해온 국회 공직자 생활을 후련하게 마감하고 일반 소시민으로 돌아갔다.

정 수석은 지난 20189월말 입법심사 기법 관련 실무 노하우들을 포함하여 국회운영과 입법활동의 소상한 이야기를 담은 <입법의 현장>이라는 책을 출간해 후배 공직자들로부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에 이어 올해 4월초에는 <교육분야 법률안 검토보고서>라는 두 번째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교육분야 법률안 검토보고서>는 수석전문위원으로 근무하는 동안 작성해온 1,000여 건 정도의 검토보고서 가운데 질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은 검토보고서들을 엄선해서 이를 사례집 형태로 묶어낸 책이다.

작은 아파트 한 켠에서 에어컨에 의지하며 제3의 작품 집필에 몰입하고 있는 정 수석의 생활은 의외로 소탈하고 평범하다.

어학원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어여쁜 딸과, 고등학생이 된 늦둥이 아들과 함께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는 정 수석을 만나봤다.

 

1. 국회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시점과 계기가 있으실 텐데요?.

1985년 대학 4학년이 되면서 졸업 후 직업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그냥 회사 취직보다는 공적인 일이 내게 더 적합하다고 생각되어서 고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국회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행시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1986년에 행시에 1차 합격을 했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1987년에 2차에 떨어졌습니다.

낙심하고 있는데 누가 입법고시가 있다고 알려주어 1988년에 1차부터 최종 합격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때 써클 회원들이 가끔 정재룡을 국회로라고 외친 적이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그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2. 지난 공직생활에 대해 압축적으로 한 말씀 소회를 밝혀주신다면?

저는 국회를 천직이라 생각했습니다. 법안과 예·결산 심사의 실무를 맡아서 일하는 기회는 무척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어떤 권한이 주어진 것은 아니지만 저는 일관되게 국정의 일익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으로 일에서 의미와 보람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저는 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를 소홀히 취급하고 있는 풍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양질의 검토보고서가 양질의 법안을 만든다는 모토 하에 입법조사관 때 뿐만 아니라 전문위원, 심지어 수석전문위원이 된 이후에도 양질의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하여 노력했습니다.

2004년 국회법제연구회를 창립하여 12년간 회장을 역임했고, 2015년 수석전문위원이 된 이후에는 매년 업무 관련 워크숍을 개최했습니다. 외부 전문가를 초청하여 의견을 청취하는 전문가 간담회와 비교할 때 워크숍은 저를 포함하여 우리 직원들이 실무 사례를 가지고 직접 발제하는 것이어서 전문성 함양에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 이해관계에 연연하지 않고 원칙과 소신을 견지하면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국가와 국민의 공복으로서 30여 년을 헌신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하여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3. 긍지를 가지고 일해 오셨다고 했는데요. 지금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어느 때보다 고조된 상황입니다. 어떤 개선책이 강구되어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 이후 권력 장악을 위한 정쟁이 더 심화되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그 이유를 지역구도라고 부르는 지역할거정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지역할거구조를 척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방법으로 발의된 것이 출신지역 차별인사금지 특별법’(유성엽 의원 대표발의)입니다. 이 법이 제정되면 지역할거정치가 극복되고 어느 정도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또한, 국회운영과 관련하여 볼 때 점점 더 안건심사가 형식화되고 있습니다. 특히 법안의 경우 발의는 폭증하고 있는데 심사는 더 부실화되고 있습니다. 위원회에서 수백 건을 상정해도 대체토론이 거의 없는 실정이고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은 미국처럼 입법청문회를 활성화하는 것입니다. 주요 법안에 대해서는 입법청문회를 사실상 필수화하여 입법의 품질을 제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입법청문회에서 이해관계자나 정부관계자, 전문가, 시민활동가, 뜻있는 공익대변자 등이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여 종합적 입체적으로 심사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4. 입법심사과정은 이해관계자나 의식있는 일반 국민의 목소리가 제한 없이 유입되어야 하는 소통의 자리입니다. 그런 공간 속에서 현재로선 의원들에게 가장 유효하게 영향을 미치는 역할자가 입법조사관, 전문위원, 수석전문위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회 입법과정에 참여하는 전문가들 가운데 최고의 숨은 역할자라고 하는 수석전문위원까지 하시고 예편하셨는데요. 그동안 사회적으로 그다지 논의가 없었던 전문위원 제도에 대해 강력하게  폐지를 주장하고 계십니다. 어떤 문제점이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현재 전문위원의 위상과 업무환경 등을 고려할 때 전문위원이 자기가 맡은 법안에 대하여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문제점을 지적하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내용이 단순한 법안이야 예외지만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울수록 검토보고에 결론이 제시되지 않습니다.

전문위원은 그것이 자기 보신에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검토보고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국민의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전문위원이 위험을 감수하고 가부판단 의견을 제시해야 할 특별한 유인이 없습니다. 현재 전문위원의 전문성에 대한 별도의 평가제도도 없어서 전문위원이나 수석전문위원은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위원회의 전문위원은 한직이고 수석전문위원마저 차관급 자리로 영전하기 전에 거쳐가는 자리 정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전문위원 검토보고제도가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도록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회사무처는 관행과 타성에 안주하고 있을 뿐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심지어 전문위원 평가제도를 도입하라는 정의화, 정세균 두 의장들의 연이은 지시마저도 흐지부지 묵살해 버렸습니다.

저는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가 우리 정치문화의 특성을 고려하여 운영되고 있다고 보지만, 현재 검토보고 제도가 그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지 않다면 무언가 다른 대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이를테면 미국식으로 가자는 것입니다. 미국은 입법지원기구인 CRS, CBO 등에서 자료를 제공하는데, 우리도 전문위원 제도를 폐지하고입법조사처, 예산정책처에서 검토의견을 제공하는 체제를 더 강화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입법지원기구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는 것으로 전문위원 제도 폐지에 따른 공백은 충분히 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문위원 제도와 별도로 두 입법지원기구가 운영되고 있어서 현재로서도 사실상 입법심사 지원 기능이 중복되는 측면이 있기에 이것을 해소하는 차원도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국회 입법보조인력 규모의 비대화를 해소하고 효율화를 지향하게 하는 방향이기도 합니다.

대신, 앞서 말한 것처럼 입법청문회를 활성화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는 입법청문회처럼 문제 있는 법안을 여과하는 효과가 있는데, 그것을 감안할 때 입법청문회 활성화 없이 전문위원 검토보고 제도를 폐지해서는 안 됩니다.

전문위원 제도를 폐지한다는 것은, 상임위원회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3인 내외의 행정실 인력(의사진행 지원, 공문 처리, 회의결과 기록, 질의시간 카운팅 등)만을 제외하고, 전문위원과 상임위별로 6명에서 10명 가까이 배치되고 있는 입법조사관 인력(전체 300여명 내외 규모)들을 전부 입법조사처나 예산정책처 등으로 돌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5. 공직자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할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저는 국가와 국민에 헌신하는 공복의식이 제일 중요하다고 봅니다. 소위 밥값을 해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국민으로부터 녹봉을 받는 공직자야말로 밥값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공직자들은 보통 보수는 기본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업무를 열심히 해야 할 동기가 잘 부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연의 업무보다 무언가 개인적 이익이 될만한 일에 관심을 갖기가 쉽습니다. 대표적으로 승진이나 요직 전보에 더 관심을 갖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됩니다.

보수는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지급되는 것이고 소홀히 일한 사람은 보수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승진이나 요직 전보도 열심히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지 일은 소홀히 하면서 승진이나 요직 전보에 집착하는 사람은 그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6. 긴 공직생활에서 벗어나셔서 해방감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100세 시대에 이제 인생 제2장을 시작하셔야 할 텐데요. 구상하고 계시는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은 무엇인가요?

시민단체인 동서남북포럼 대표 활동을 좀 하고 있습니다. 동서남북포럼은 시민들로부터 의견을 받아서 공익적 취지의 법안을 입안해서 직접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력하는 국민입법참여 실무지원 단체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제 나이 마흔 넷일 때 태어난 늦둥이 아들이 저의 운명을 바꾸어놓았습니다. 저는 아모르 파티라는 말을 좋아하는데, 제 운명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아들을 초3부터 고1 지금까지 7년여 기간 동안 혼자 키워왔는데, 저는 아들이 가장 중요한 고등학교 시기를 잘 보낼 수 있도록 성심으로 뒷바라지하고 싶습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을 뒷바라지하기 위하여 멀쩡한 직장을 중간에 일찍 그만두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아들이 고등학생이 된 올해 정년 1년 전에 용퇴하게 된 것을 오히려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봉사활동 등 순수한 의미의 사회 환원 활동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처럼 공직자로 퇴직한 사람들이 견지해 가야할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재룡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 프로필

정재룡 전 수석은 전남대 경영학 학사, 미국 인디애나대 법학 석사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 법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88년 시행된 제9회 입법고등고시로 국회에 입문하여 농림해양수산위 입법심의관, 기획예산처 장관입법보좌관, 국회운영위 입법심의관, 정무위 전문위원, 보건복지위 전문위원, 법제사법위 전문위원,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수석전문위원, 교육위 수석전문위원을 역임했다.

현재 입법분야 전문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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