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2015년 개봉한 이 영화는 2010년작 동명의 소설 ‘열정, 같은 소리 하고 있네’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인데 위에 써 놓은 것처럼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채 제목을 정하고 개봉했다. 이미 이 영화 개봉 3년 전에도 정기훈 감독은 자신의 작품 ‘반창꼬’때에 발음되는 그대로 제목을 정했다가 모 한글단체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바 있다. 이러한 독특한 제목의 작명이 작품의 분위기 때문인지, 자신의 제목 작명법에 항의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냉소인지, 감독 특유의 성향인지는 모르겠으나 전작에 비해 그리 논란이 되지 않은 것은 이 영화 제목의 띄어쓰기가 그리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었기 떄문이었나 보다.(영화와 그 제목 등의 창작물에 맞춤법, 발음, 띄어쓰기가 중요한지 아닌지는 독자 각자의 판단에 맡기겠다)

제목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 좀 더 언급해 보기로 하고 이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면 신문사 연예부에 수습기자가 된 여주인공(박보영) 도라희를 중심으로 한 몇 가지 갈등들로 이뤄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문사 간부인 부장과 각 입사한 수습기자의 갈등, 기자와 취재원(取材源)의 갈등, 연예인과 기획사 대표간의 갈등 등 인물들 간의 갈등이 있고, 이에 더해서 선정적 특종취재와 저널리즘이 부딪히는 가치가 대립하는 갈등이 있다. 그리고 기존 언론(신문사)과 SNS의 싱거운 힘겨루기도 일종의 갈등이라면 갈등이다.(이 힘겨루기는 극중 최대의 갈등을 해소하는 중요한 소재로 활용된다)

이 영화는 위에서처럼 갈등 구조를 파헤쳐보는 것도 재미있지만, 아무래도 정기훈 감독의 장기인 특정 직업군(영화 반창꼬에서는 소방관, 이 영화에서는 기자)에 대한 이야기를 에피소드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 갈등과 애환을 관객에게 같이 느껴달라고 압박하지 않고 가볍게 들여다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장면에선 감독 특유의 비틀기로 지루함 없이 영화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점 등이 재미의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다만 이 영화는 후반부로 갈수록 제목‘열정~’과는 다소 멀어지는 느낌은 좀 아쉽다. 하지만 초반부에서는 제목에서처럼 이 사회가 ‘열정’이란 이름으로 젊은 직원들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적은 급여, 휴일과 휴가 없음, 상사의 성희롱 등이 영화에서 폭로되는, 강요받는 열정의 종류들이다. 박봉, 휴일(휴가) 없음은 근무조건에 명시되는 것으로 이미 알고 입사한 것이니 감내가 가능할 만하다 할 것이다. 영화에서도 주인공 도라희는 이 부분에 많이 실망을 하지만 툴툴거리는 정도의 불만을 제기하고 만다. 하지만 성희롱마저도 아무렇지 않게 넘겨야 사회생활 잘하고 또 열정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는 직장 내의 분위기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잠시의 시간 정지들을 통해 조금은 더 무게감 있게 다룬다. 그렇다면 영화에서도 가볍지만은 않게 다루고 있는 성희롱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먼저 희롱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살펴보면,

희롱

1. 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

2. 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놂

3.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

4. 악기 따위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이다.

위의 사전적 의미들을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의 상황을 대입하여 과연 어떤 입장에서 저 말들을 하게 되는지 생각해 보자.

1번의 의미‘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은 영화 속 사원간의 대화에서처럼 처음부터 성과 관련된 대화(놀림)로 시작되거나, 영화의 또 다른 장면에서처럼 실없이 놀리던 중에 의도치 않게 성적인 농담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 성희롱을 한 사람은 전자보다는 후자의 상황이었음을 주장하게 될 것이고 또 그것이 실수였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성희롱 목적으로 한 대화인지 아니면 의도치 않은 실수인지의 차이에 따라 생긴 상처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2번의 의미‘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놂’도 역시 성희롱을 한 사람의 입장에서 하는 말이 되기 쉽다. 영화 속에서 부장은 회식 중에“나도 도라희 00 봤다고 했었는데, (중략) 뭐 볼 것도 하나 없던데?”라고 말하고 이에 여주인공 도라희는 “아~ 괜찮습니다 네, 전 뭐 볼 것도 없는데요 뭐~”라고 탐탁하진 않지만 웃으며 받아넘긴다. 이 상황을 실재라 가정하고 부장에게 성희롱 혐의를 묻는다면 서로 재미있는 대화(농담)을 주고 받았을 뿐이라고 할 것이다.(그렇지만 피해자가 이 말에 동의해야지만 가해자의 성희롱이 혐의 없었음을 증명받는 절박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의미 3번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은 피해자들이 느끼는 불쾌감, 즉 피해의 본질이다. 실제 상황에서 피해자는 자신이 가해자가 제멋대로 가지고 논 노리개처럼 취급당한 것 같은 모욕감을 느꼈다고 말한다. 거기에 성희롱은 대화의 주제에 성적인 것들이 담겨있으므로 수치심이 동반된다. 즉 불쾌감과 수치심의 복합적 작용으로 피해가 발생한다.

우리가 이 영화와 희롱의 뜻을 통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실없이 한 행동이나(의미 1번), 재미를 위해 친 장난(의미 2번)이라 할지라도 상대는 ‘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의미 3번)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희롱이란 단어의 뜻에 ‘놂’과 ‘놀림’ 둘 다 들어있는 것은 놂과 놀림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라고는 해석도 가능하겠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그만큼 놂과 놀림은 구분이 어려우므로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성희롱은 영화에서처럼 위계관계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없는 행동, 그리고 놀림이란 것은 후배직원이 상사에게 할 수 없는 행위임을 감안하면 당연히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행위일 때가 절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당하는 입장에선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 함께 즐겁지 않아도 웃고 있어야 하는 고통까지 감내해야 하는 다중적 피해를 입는 것이 성희롱인 것이다.

이 영화는 후반부에 도라희가 사표를 쓰는 장면부터 열정과는 좀 멀어지는 느낌이있다. 유리한 제보자가 등장하기 전까지 도라희는 사실상 자신의 일을 포기했다. 열정의 힘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보기 애매한 결말이다. 그래서 띄어쓰기부터 남달랐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을 아우르지는 못하는 느낌이 있다.(영화를 보는 데에는 전혀 문제되지 않지만). 다만 열정이라는 미명 속에 성희롱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었을 수 있고,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장난과 농담 속에도 얼마든지 성희롱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데에는 충분한 역할을 한 영화이고 또 제목이다.

 

논술격투가 안주혁 소개

 

前 메가스터디 논술강사

前 이투스 온라인 논술강사

前 대한교과서 논술 수석연구원

現 동국대학교 로스쿨 논술 특강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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