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왕 랄프 1

 

2019년 1월 개봉한 애니메이션‘주먹왕 랄프2 : 인터넷 속으로’는 2012년 ‘주먹왕 랄프 1’의 속편으로 7년 만에 만들어졌다. 이 영화 랄프2가 인터넷 게임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면, 2012년 1편은 아케이드 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과거 인기 있었던 수많은 게임 속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켜 성인 관객들의 향수를 한껏 자극했었다.(스트리트파이터의 장기예프, 켄, 류와 팩맨, 큐버트 등이 출연하며, 수퍼소닉도‘출현’한다). 게임 캐릭터들이 오락실 문 닫는 시간에는 퇴근해 끼리끼리 모여 여가를 즐기고, 오락실이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하루를 시작하고, 게임기에 동전이 투입되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이 영화(1편)를 보는 모든 이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안겨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어린 관객들이 좋아할만한 요소도 빼놓지 않았는데, 영화의 주 무대인 ‘슈가 러쉬’엔 가로수 모양의 막대사탕,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솜사탕, 아이스크림 눈과 쵸컬릿 늪, 그리고 슬러시 웅덩이, 푹신한 젤리 바위와 웅얼거리는 오레오과자 호위병 등 각각의 특징을 반영한 음식 소품들이 요소요소에 등장해 상상의 재미를 더해준다.(단, 액션 게임 캐릭터들은 좀 폭력적이다 - 주인공 랄프도 같은 말을 대사로 한다)

중심 인물들을 통해 내용을 살펴보면, 게임 속에서 지어 놓은 건물을 부수는‘나쁜 놈’역할을 맡았다는 이유로 외톨이가 된 랄프. 게임 출시 30주년 행사에서조차 친구들에게 초대를 받지 못하게 된 랄프는 낙담하여 자신과 같은 처지의 악당들 모임을 찾아가게 되는데, 그 모임의 악당 동료들로부터도 마음에 들지 않는 말들을 듣게 된다. ‘프로그래밍 된 네 역할을 거스르면 안 된다’, ‘네가 맡은 역할을 인정해야 게임 전체가 편해진다’, ‘착한 놈, 나쁜 놈의 꼬리표에 연연하지 말아라...’등.

그는 ‘나쁜 놈’ 대신‘착한 놈’이 되거나, 영웅의 메달을 따서 게임 속 캐릭터들과 친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자신의 게임을 나와 다른 게임 속으로 들어간다.

랄프는 이 여정에서 또 한 명의 주인공 바넬로피를 만난다. 바넬로피는 레이싱 게임‘슈가 러쉬’게임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그녀가 프로그램상 약간의 오류를 가졌다는 이유로 모두에게서 따돌림을 받으며 외롭게 살아간다. 하지만 바넬로피는 이에 굴하지 않는 씩씩한 꼬마 소녀이며 운전을 할 줄 모르는 당당한 카트 레이서다.

이 두 주인공은 영웅의 메달 차지를 놓고 벌이는 갈등으로 처음 만났지만, 각자가 따돌림받는 외톨이(소외자)라는 같은 입장임을 알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친구가 되며, 우여곡절 끝에 함께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이 영화는 두 주인공을 ‘소외’라는 공통점으로 묶어 둘 간의 거리를 좁힌다. 그리고 자신들 앞에 놓인 공통의 문제점인 ‘모순’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주로 바넬로피의 문제를 해결) 한다.

두 인물을 좀 더 들여다보면 보이는 또 하나의 주제는 좀 전에 언급한‘모순’이다. 랄프는 감성적이고 착한 심성(바넬로피에 대한 랄프의 헌신과 희생을 보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건물을 파괴하는 악당 역할을 맡고 있다는 모순을 갖고 있다. 그리고 꼬마소녀 바넬로피는 슈가러쉬 게임을 대표하는 중심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게임속 무리들의 결정에 의해 게임에 출전조차 하지 못하는 모순 속에 빠져 있다. 또한 이 영화의 진짜 악당인 캔디 킹은 정작 자신이 다른 게임에서 넘어온 ‘오류’였으나 바넬로피의 ‘오류’를 들춰내서 모두가 그녀를 소외시키도록 조장하는 모순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영화가 게임을 주제로 한 애니메이션임에도 마냥 가볍지만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을 만한 소외와 모순의 문제들을 등장인물을 통해 낱낱이 보여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실질적 주제라 할 수 있는 ‘모순’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자.

모순

1.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

2. 두 가지의 판단, 사태 따위가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 배척하는 상태

3. (철학) 철학 투쟁 관계에 있는 두 대립물이 공존하면서 맺는 상호 관계

이다.

나도 겪고 살지만, 남도 겪으며 사는 이런 모순은 때때로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등장하기도 한다, 최근 불거진 성전환 부사관의 군복무 문제, 변하사 이야기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위의 사건을 ‘모순’의 사전적 의미 1,2번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변하사는 어린시절 본인의 꿈대로 부사관 특성화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육군 부사관으로 임관됐다. 그러나 이후 성정체성의 혼란과 그로 인한 우울증 증세가 심해져서 군복부를 지속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트렌스젠더가 겪는 성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전형적 모순의 상황이다) 남군에 입대하여 복무하던 중 스스로 여성임을 깨닫게 되어 복무의 지속이 어려워졌다는 이 사건의 시작점은 (마치 랄프가 착한 놈이면서 나쁜놈의 역할을 했었어야 했던 것과 유사하게) 모순의 사전적 정의 1번, ‘어떤 사실의 앞뒤, 또는 두 사실이 이치상 어긋나서 서로 맞지 않음(않게 됨)’에 해당된다.

이 후 소속부대에 이해와 응원(변하사측 이야기)에 힘입어 성전환 수술을 받고 군복무를 지속하려 하였으나, 복무 중 성전환에 대해 ‘심신장애’라는 이유를 들어 강제전역을 명한 육군의 결정과 충돌하게 되었다. 이 문제는 성전환 병사의 복무 지속의 요청을 거부한 육군의 결정과 이에 굴하지 않고 복무 지속을 위해 볼복과 법적대응을 시사한 변하사의 의지가 양립하지 못하고 배척되는 상태로 발전했다. 이 상황은(약간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다른 캐릭터들로부터 출전불가 결정을 당한 바넬로피가 출전을 위해 지속적으로 그들과 대립하는 상황과 유사) 모순의 정의 2번‘두 가지의 판단, 사태 따위가 양립하지 못하고 서로 배척되는 상태’이다.

육군이 이 사안에 대해 ‘성소수자 병역 문제’와 별개임을 발표하면서, 정면 대결인 듯, 아닌 듯하게 바뀐 현 양상은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정당한 논거를 찾는 것에서 더 나아가 상대 논리의 모순을 밝히는 데에 까지 초점이 확대되고 있다. 상대가 제공하는 논리를 반박하면서 서로 자신의 논거를 강화, 성장시키고 있는 중이다. (한쪽은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강화하고, 한쪽은 입장에 대한 타당성을 강화하며 논리를 키워 가고 있다)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은 모순을 극복하고 헤쳐나가면서 ‘선’이 되어 행복을 가져갔고, 반대로 모순을 일으키는 쪽(캔디 킹)은 ‘악’으로 묘사되며 응징의 대상이 되었다. 변하사의 사건에 대해 어떤 판단 혹은 입장을 가져야 할지가 쉽지만은 않은 이유는, 그를 사회의 모순을 헤쳐나가는 것으로 보는 시각과, 반대로 모순을 일으킨 장본인이라는 시각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건 변하사 사건은 결론이 지어질 것이다. 다만 승리(?)를 가져가는 쪽은 더 많은 공감을 얻는 쪽이다. 바넬로피가 랄프의 공감으로 소외와 모순을 해결한 것처럼 주변의 공감은 강력한 힘이다. 육군과 변하사, 어느 쪽이 더 많은 공감을 얻게 될지 주목해 볼 일이다.

 

논술격투가 안주혁 소개


前 메가스터디 논술강사

前 이투스 온라인 논술강사

前 대한교과서 논술 수석연구원

現 동국대학교 로스쿨 논술 특강 강사

 

저작권자 © 의회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