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신문=심백강 박사】퇴계전서, 율곡전서,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의 주요 고전들을 번역한 국내 굴지의 한학자이자 한·중고대사를 전공하고 중국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받은 역사학자인 저자 심백강 선생은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에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포함되지 않은 고조선의 비자료, 사대 식민주의자들이 밝히기를 꺼린 채 감추어 왔던 ‘고조선의 숨은 자료’들을 새롭게 밝힌다. 본지에서는 영원히 잃어버린 줄 알았던 위대한 고조선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남은 과제에 대해 5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우리는 왜 상고사를 잃어버리게 되었나

조선왕조에서의 상고사 자료 은폐

고려 태조 왕건은 자신의 호칭을 과인이 아닌 짐이라하고, 천수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하늘에 천제를 지냈다. 이는 우리나라가 고려 때까지는 중원의 황제와 대등한 천자의 나라로 존재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하지만 조선조에 이르러 제후국으로 격하되어 명나라를 상국으로 모시며 유명조선국을 자처했다. 고조선부터 고려에 이르기까지 천자국으로 군림했던 과거 역사가 이씨조선의 입장에서는 몹시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우리 상고사 역사 자료에 대한 은폐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의 세조 3년 5월 26일 조항을 보면, 민간에서 개인 소장을 금하는 책 이름을 나열하여 임금의 명으로 각 지방의 도백들에게 이를 모두 수거하라고 하달한 문건이 실려 있다. 여기 열거된 책명 중 고조선비사, 조대기, 표훈삼성밀기 등 책이름만으로도 우리 상고사를 다룬 내용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는 문헌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귀중한 문헌들은 책이름으로만 전해질 뿐 실제 내용은 접할 수 없다.

결국 조선왕조에서 우리 상고사 기록들에 대해 개인 소장을 금하고 환수 조치한 이유는 우리가 대륙의 주인으로서 중원을 지배했던 웅대한 고조선, 고구려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 명나라에 대한 사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파기와 유실을 일삼은 일제강점기

'고조선비사'나 '표훈삼성밀기' 같이 책이름에 비사나 밀기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 조선왕조에서는 공개적으로 책의 소장을 금지했지만, 민간에서는 비밀리에 기록이 전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민간에서 수거한 뒤에도 이를 폐기처분하지는 않고 아마도 장서각 같은 왕실 도서관에 따로 보관하도록 조치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나라가 망하면서 왕실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책들이 온전했을 수 없다. 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를 설치하고 고조선사 말살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일제에 의해 파기, 유실 되었을 것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의 기록 부실과 '한단고기'의 한계

고조선비사를 잃어버린 오늘날 현존하는 한국의 최고 사료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있을 뿐이다. 이 책들은 책이름처럼 고구려·백제·신라 삼국의 역사를 위주로 기술한 것이지 상고시대 역사는 아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비록 고조선사기는 아니라 하더라도 신라의 뿌리인 고조선의 유민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설명하고 넘어가갔어야 했다. 하지만 ‘조선유민’이라는 네 글자 외에는 일체 추가 설명이 없다. 이는 고조선사를 빼놓고 언급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그 부분이 뒤에 조선조 때 삭제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서두에 고조선 조항이 들어있다. 하지만 2천년 고조선 역사를 단 두 페이지에 서술하다 보니, 내용이 너무 부실한 것이 흠이다. 몇 줄 안 되지만 단군조선에 대해 전하고자 한 일연의 공로는 인정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한단고기에는 웅대한 역사가 멋지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만 있다. 또한 비전으로 내려오다가 100년 전에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그 사료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이처럼 오늘날 우리가 상고사를 잃어버리게 된 주요 요인은 △조선왕조에서 명나라 사대에 앞장선 자들의 상고사 자료 은폐 △일제강점기의 민족정기 말살을 위한 상고사 자료 파기·유실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기록 부실, 한단고기의 사료적 한계 등을 꼽을 수 있다.

▲ 심백강 선생이 ≪잃어버린 상고사 되찾은 고조선≫에서 고조선의 주 활동무대로 밝힌 하북성 동부 일대 지도.(오늘날의 노룡현 일대)

◇고조선은 어떤 나라인가

고조선은 천하를 경영한 제국

일제는 단군은 야사인 삼국유사에만 보이고 정사 기록에는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실제 역사가 아닌 신화로 치부했다. 하지만 정사인 세종실록에는 조선, 시라, 고례, 남옥저, 북옥저, 동부여, 북부여, 예와 맥 등 아홉 나라가 다 '단군지치(檀君之治)', 즉 '단군이 통치하던 나라'라고 나온다. 명나라 오명제가 저술한 '조선세기'라는 책에는 단군에 대해 구이군지(九夷君之), 즉 ‘아홉 개 이족들이 그를 임금으로 삼았다’라고 전한다. 이런 기록들에 따르면 단군은 신화적 인물이 아닌 천하를 경영한 고조선 왕국의 제왕이었고, 단군조선은 변방의 소국이 아닌 아홉 개의 제후국을 거느린 대제국이었음이 분명하다. 

로마, 한 왕조보다 위대했던 고조선

영국 역사학자 토인비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로마의 카이사르와 한 왕조의 유방을 꼽는다. 카이사르는 로마 천년 왕정의 기틀을 잡았고, 유방은 한 왕조 2000년의 기반을 닦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로마는 지금 국가도 민족도 남아있지 않고 역사로만 존재하며, 한 왕조의 역사는 서한 말엽 한 차례 망국의 과정이 있었고 이민족에 의한 지배도 수백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엄격히 말해서 고조선과 같이 역사가 그대로 살아서 면면히 이어지고 있지 못하고, 단군에 의해 건국된 후 내란이나 외침 없이 2000년 역사를 고스란히 유지해 온 것도 고조선 뿐이다. 따라서 카이사르의 로마보다 위대하고 유방의 한 왕조보다 위대한 나라가 우리의 고조선이다. 

고조선은 한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의 상징

고조선은 동양역사의 시원이다. 독일·프랑스·영국의 역사는 천년을 넘지 않고, 미국은 200여 년에 불과하다. 우리가 반만 년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 선진국이 될 수 있는 것은 고조선이 있음으로 가능한 것이다. 또한 고조선은 경제·문화 각 방면에서 중국을 능가하는 선진적인 차원에 도달해 있었다. 우리에게 고조선이 없었다면 우리는 중국 한문화의 아류에 불과하고, 우리에게 요서조선이 없었다면 한반도에 뿌리를 둔 반도국가에 불과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인에게 있어 고조선은 민족 건국의 출발점인 동시에 긍지와 자존심의 상징이다.

심백강 박사

【저자소개】심백강 | 역사학 박사·민족문화연구원장
퇴계전서, 율곡전서, 조선왕조실록 등 한국의 주요 고전들을 번역한 국내 굴지의 한학자이자 동양학자이다. '이야기로 배우는 동양사상'으로 동양사상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사고전서'를 바탕으로 한 역사연구서를 펴내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장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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