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대일(對日) 외교

▲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1일 오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컨벤션센터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ASEAN+3와 동아시아 기업인 협의회간 대화에 참석해 참모진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의회신문】국가외교에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 이 말은 미국을 비롯한 그 어느 나라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국⋅러시아⋅일본⋅중국 등 세계의 여러 강국들도 이해관계의 변화에 따라 그때마다 얼마든지 태도를 돌변할 수 있다.

얼마 전부터 미국 의회에서는 한국이 미국에 과도한 안보부담을 지우고 있다면서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심각하게 문제 삼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안보를 일정부분 책임져주고 있는 동안 한국은 국방에 쏟아야 할 힘을 덜어 그 여력으로 경제발전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이룩한 한국의 경제, 곧 한국 상품이 야금야금 파고들어와 미국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서방국 정상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중국의 전승절 행사에 참석해 중국 인민해방군의 사열을 받고 돌아온 후 미국 조야에서는 이 같은 ‘한국의 안보 무임승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한층 고조되고 있다.

사실, 북핵(北核)을 머리에 얹고 사는 대한민국은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기대는 의존도가 거의 절대적이다. 미국이라는 ‘세계적인 군사⋅경제력의 지존(至尊)’이 한국의 안보를 뒤받쳐 주면서 버티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등 주변 강국들은 지정학적으로 민감한 한반도 문제에 본격적으로 끼어들어 영향력을 휘두르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고 균형을 유지한다.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은 세계 어느 나라도 감히 맞설 엄두조차 낼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G2 국가인 중국이 비록 군사대국화를 지향하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의 수준에 근접하기란 앞으로도 ‘거의 영원히’ 불가능하다는 것이 세계 군사 전문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중국 자신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만일의 경우 설령 미국이 한⋅미 동맹을 느슨하게 풀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설지라도 중국이 미국 대신 그들의 기존 정책과 태도를 바꾸어 북한을 버리고 우리 편에 서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는 모양이다.

일본에 대해서도, 일본이 과거의 죄업에 대해 더 깊게 반성하고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한 일본은 한국으로부터 중국과 동격으로 대우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유의 판단은 틀렸다.

일본이 과거에 큰 죄를 지었다고 해서 미래까지 나빠져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일본을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 일본으로 하여금 아시아 지역공동체를 위해 건설적인 역할을 유도함으로써 일본의 기여를 최대화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이익에 부합되는 일이다.

한국외교는 일방적으로 미국이나 중국의 환심을 얻는 데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공동체를 활성화하는 데 보다 더 주력해야 한다.

일본은 한국이나 중국에서 인기도 신망도 없다. 그러나 동남아시아나 중앙아시아, 신장(新疆)위구르나 몽골 등지에서는 가장 광범위한 인기와 신망을 얻고 있는 나라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들에게 일본이 가장 많은 원조를 제공했고, 후진국의 개발과 선진화에 적지 않은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의 죄악만을 소리 높여 외쳐 우리가 얻은 이익은 무엇인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굳이 일본과 비교한다면 중국은 부분적으로 중진국 수준에 진입했을 뿐 후진국의 흔적이 아직 적지 않게 남아 있는 나라다. 한국도 부분적으로는 선진 대열에 들기 시작했지만 아직 많은 분야가 중진국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 상태다.

후진국과 중진국이 합세하여 선진국을 배척하고 몰아세우는 것은 책략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다. 그러나 동북아 나아가 세계 평화와 번영을 만들기 위한 목적에는 도움이 될 수 없다. 과거를 트집 잡아 따돌리며 대화를 거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겠다고 버티는 태도를 가진 국가를 세계 어느 나라가 우호적으로 여길 것이며 존경하겠는가?

차라리 일본을 동아시아공동체의 협력과 평화, 그리고 공동번영에 앞장서게 만들어 기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역사적인 과오들을 효과적으로 보상⋅탕감하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한국 외교부는 좀 더 지혜롭고 어른스럽게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며 장기적인 안목으로 외교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조선일보’ 신정록 논설위원은 2014년 12월30일자 칼럼에서 “있는 그대로의 일본을 볼 때가 됐다”라는 글을 썼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얼마 전 일본 내각부는 일본 국민을 상대로 매년 실시하는 여론조사에서 “한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응답이 66.4%로, 역대 최고치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2011년 36.7%에서 2012년에 59%로 갑자기 오르더니 2013년 58%를 거쳐 2014년 정점을 찍은 것이다.

이 조사가 시작된 게 1978년이니 군사정권 시절보다 한국을 더 싫어하고 외면하게 됐다는 얘기다. 구로다 가쓰히로 씨가 2014년 연초 ‘주간조선’에 실은 글에서 “한국의 실패가 일본의 기쁨이 된 것 같다”고 했을 정도로 일본 내 반한정서가 험악해졌다는 것이다.

남을 모욕하거나 잘못되게 만들면 돌아오는 것은 복이나 영예가 아닌 어리석은 실수와 재앙을 일으키는 악업일 뿐이다. 일정(日政)시기에 반일의지나 항일투쟁은 영웅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문명화된 21세기에 와서 반일언행을 존경받는 행위로 착각하는 사람은 국가이익을 손상하는 사람이다. 그런 행위는 국익이나 평화나 그 어떤 일에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근래에 와서 한국과 중국의 노골적인 반일정책과 행위가 일본 아베 정권으로 하여금 재무장을 위한 헌법 개정을 부추겼다. 공교로운 일일 수 있지만, 동북아 3국의 지도자들은 모두 2세 정치인이다. 이들이 등장한 이후 동북아 정세는 위험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겉으로는 미소를 보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아슬아슬한 기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김씨 왕조의 3대 김정은을 앞세운 북한은 입만 열면 ‘핵 성전(聖戰) 유의 위협을 늘어놓는다. 최근에는 중국이 남중국해의 국제적 해상통로에 흙과 콘크리트를 부어 인공섬을 만들고 해⋅공군 기지를 세워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자 아시아⋅태평양 지역 18개국이 들고 일어났다.

마침내 미국이 전투기와 구축함까지 동원해 중국을 압박하고 나섰고, 중국도 이에 맞서 강력하게 저항했다. 동남아 해양주권을 놓고 벌어진 이 다툼은 미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맞붙어 일촉즉발의 위기로까지 치달았다.

동북아의 사정은 동남아보다 훨씬 더 긴박하다. 증오와 분노의 에너지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쌓여가고 있다. 지금 동북아 각국 사이에 얽히고설킨 갈등은 어설픈 중재로는 풀기 어렵다.

이것이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의 급류다. 우리가 이 급류를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축적된 증오와 분노는 어느 시점에 반드시 대가를 요구할 것이고, 언제 대형 재앙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한⋅중⋅일 3국은 지금 자국의 눈앞 이익이나 권위 체면을 모두 내려놓고 평화와 번영이라는 시대적 과제 달성을 위해 힘을 합쳐야 하는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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