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교의 새로운 좌표 설정…변화하는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세

【의회신문=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중국이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급성장, 러시아를 대신하여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신흥세력으로서의 위세를 키우며 새로운 G2 국가로 부상했다.

지난 세계대전 이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한때 미국⋅일본⋅한국의 남방 삼각관계와 소련⋅중국⋅북한으로 구성되는 북방 삼각관계의 대립으로 편성됐으나, 21세기에 와서는 러시아를 대신하여 중국이 부상하는 가운데 한국은 북한을 대신하여 중국과 맹방의 관계로까지 가까워져가는 듯한 기미마저 엿보이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으로 불안해진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일환으로 일본의 재무장을 허용하면서 일본과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것은 한미군사동맹에 치중했던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확대를 시사한다. 이제 한국도 이 같은 동북아시아의 변화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박근혜 정부는 친중⋅반일정책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중국으로서는 박근혜 정부가 친미정책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데다 북한 정권을 완전히 내칠 수도 없는 처지이다. 한국으로서는 친미도 친중도 미국과 중국의 관계가 순조로울 때나 유지될 수 있는 것이지 오늘날처럼 긴장된 상황에서는 유지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친중⋅반일 정책을 견지해 왔으나 미⋅일 관계가 긴밀해지는 상황에서 종래의 반일정책은 오히려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친중⋅반일정책을 유지하는 한 한미동맹관계는 껄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미국의 반중⋅친일 정책노선이 한국의 친중⋅반일정책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한국으로서는 친중노선을 버릴 수도 없는 처지이니 입장이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사람이든 국가든 상호 접촉과정에서 화해 협력을 하게 되는 경우는 적지 않다. 한일관계만 보더라도 사람들의 생각이나 성격에 따라 이익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손해를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이 한국을 강제 합병한 후 식민정책을 시행하는 동안 한국인들을 억압하며 수탈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나아진 면도 적지 않다.

일본이 을사늑약을 맺은 1905년과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료된 1945년 한국 사회의 변화를 살펴보자. 상세한 통계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약 40년 남짓 기간에 우리나라는 많은 도로가 만들어졌고 여러 교통수단도 획기적으로 발달하였다. 전국의 전차와 기차 교통망도 급증하였다.

무엇보다도 농업⋅어업⋅상공업 생산량이 2배 이상 급증했으며 교육인구도 크게 늘어나 문맹률도 급감하였다. 일본인들은 자기 나라의 강화를 위해 한반도에서 엄청난 수탈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많은 공을 들여 40년간 한반도 개발에 진력했다. 물론 일본의 한반도 개발은 한국인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일본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패전으로 한반도에 쏟아 부었던 밑천은 물론 그에 대한 품삯 한 푼 받지 못하고 본토로 쫓겨 갔다. 일본은 1950년대 한일회담 당시 이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내려고 기도했으나 미국의 압력으로 오히려 3억 달러 융자, 3억 달러 배상금 등 총 6억 달러를 한국에 지급하는 데 동의해야 했다.

한국은 해방 후 급속한 산업화⋅근대화를 이룩하며 급성장했다. 수많은 후진국이 주변 강대국의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한반도만큼 선진국의 문턱까지 오른 나라는 없다. 한국 사회가 이처럼 급성장한 데에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이 많은 공을 들여 한반도를 집중적으로 개발했던 영향이 크다.

이와 같은 근대화⋅산업화의 기초와 아울러 6⋅25동란 이후 미국과 함께 일본의 경제와 과학기술이 부분적으로나마 한반도에 상륙하기 시작했다. 한국은 이에 힘입어 1960년대 이후 초고속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다.

◇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와 한국의 대일(對日)감정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미국⋅중국⋅일본⋅러시아, 그리고 남⋅북한 등 6개국 간의 합의와 협조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들 6개국 간의 불만과 긴장은 갈수록 더욱 격화되어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중국 상호간의 불신과 경계는 그 골이 깊어만 가고 있어 관계개선의 가능성은 멀어지고 있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를 개선하는 데 있어 한국의 대일(對日)태도나 적대적 노선도 문제다. 196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으로부터 3억 달러의 배상과 3억 달러의 민간융자를 받았고, 일본의 기술 지원에 힘입어 산업화 정책에 획기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일본은 이 같은 배상과 지원으로 자신들의 죗값을 치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산업화혁명이 단시간에 이루어지고, 기록적인 단시일 안에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기까지 일본의 지원이 한 몫을 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인들 사이에는 일본이 아니어도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강변하면서 일본이 민족주의를 계승하여 과거의 제국주의적 팽창주의의 입장을 취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여기에 ‘친일은 반민족이며, 반일만이 애국주의’라는 좌파세력의 거듭된 선동이 가세하고 있다.

박근혜 외교노선의 타당성 여부는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라는 환경과 맥락에서 판단되어야 한다. 중국의 패권화 움직임은 미⋅일 동맹을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또한 일본 민족주의를 소생시킴으로써 보수세력의 정권장악을 가능케 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재무장을 촉진하는 구실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이 모두 중국 민족주의에 의하여 강화된 반미의식과 반일 열기가 초래한 결과이다. 보수파의 대표 격인 아베 신조가 일본의 새로운 통치자로 올라서도록 여건을 조성한 것도 중국 민족주의 파장에 기인한다.

중국이 과거 일본의 중국 침략과 그 해악을 자주 거론하며 일본을 궁지로 몰아세우는 데에는 중국의 패권을 강화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 이러한 국제적 상황이 박근혜 대통령을 친중⋅반일외교의 방향으로 유도한 것이다. 한국의 친중⋅반일외교가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과 충돌한다면 그것이 우리의 국가이익에 보탬이 될 것인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은 어차피 한⋅중⋅일 3국의 공동책임이다. 근래에 와서 중국과 한국은 일본의 과거 침략주의와 반성 부족을 빌미삼아 공격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유일 초강대국 자리를 흔들어 놓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의 패권지위를 흔들려는 행위는 재앙을 불러들이는 결과만을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은 일본을 압박하고 과거의 죄업을 계속 들추며 공격함으로써 일본을 고립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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