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현장 목소리 절절히 느껴지는 ‘제안문’ 쏟아져 나와야 진짜 의회정치

 [입법비평 1 : 국회 의안 서식 현대화 제안] 

 국민 알권리 가로막는 ‘법안 발의 서식’ 개선해야

◇ 특권 폐지부터 권위주의 타파까지 국회 개혁 과제 산적

    다만, 작아 보이던 실무 관행들도 하나씩 개선해 나가야

일반 시민들에게서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을 넘어 ‘극혐’이 느껴지고, 여차하면 터질 것 같은 ‘저항감(불복종행동 등)’마저 감돌고 있음을 느낍니다.

국민이 지금 요구하고 있는 것은, 검약과 지성을 가진 공복으로서 직분에 충실하면서, 존경받는 것 외에는, 다른 어떠한 달콤한 혜택도 특수계급화의 행태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100가지가 넘는 국회의원직의 특권들을 확실하게 줄여나가야 합니다. 금뱃지만 차면 신속하게 학습해 버리는 특유의 권위주의도 씻어내야 할 일입니다. 크고 무거운 국회 개혁 과제들이 참 많이도 쌓여 있습니다.

다만, 이번 연재에서는 국회 내의 조금 소소한 듯한 주제들을 하나씩 짚어보고자 합니다.

묵직한 국회 개혁 과제들도 사실은,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동안 일반적이라고 여겨왔던 실무 관행들로부터 기인하는 문제들이 적지 않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디테일한 것이 더 무섭고 더 교묘한 법입니다. 사소하게 치부해왔던 것들이 계속해서 쌓이면 결과적으로 커다랗고 무거운 적폐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 전근대적인 법률안 작성 방식, 민생현장 소상히 담아낼 수 있도록 ‘현대화’해야

국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소한 것 같지만,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어느 순간 사회 일반의 척도로 자리 잡고, 관행으로 굳어져 유통되곤 합니다.

국회의 여러 가지 소소한(?!) 실무행정 가운데, 가장 우선 비판적으로 짚어 봐야할 문제로, 법률안 작성 방식(의안 양식)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국회의원 의정활동의 기본이 되는 법률안 작성 방식부터가 너무나 많은 문제점들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안 작성 방식에 대해 학계에서 그동안 가장 많이 제시된 의견으로는, 법률안 전체에 대한 포괄적 제안설명문 만을 기재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개정하고자 하는 조문, 제정하고자 하는 조문 하나하나에 대해서 그것이 왜 입법화를 필요로 하는지 입법취지를 적시(입법논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국회 구성원인 전문위원과 입법조사관 그룹 사이에서 더 많이 나오는 의견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전문가들의 주장에 백번 공감합니다.

다만, 여기에 한 가지 더 추가되어야 할 관점이 있습니다. 법률안을 작성할 때, 일단 ‘제안설명문’ 코너에서 만이라도 민생 현장과 국민의 목소리가 좀 더 소상하게 담겨질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상전벽해처럼 변해버린 시대상에 걸맞게, 법률안 양식도 ‘현대화’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 건조무미한 법률안 제안설명문, 더 이상 방치해선 안된다.

우선, 의원이 법률안을 제출하면서, 발의 취지를 적도록 되어 있는 ‘제안이유(제안설명)’ 코너가 지금까지 너무 지나칠 정도로 간결화 되어 있습니다. ‘입안실무기준’을 굳이 거론할 필요 없이, 입법 취지를 가급적 핵심만 간략하게 압축적으로 기재하도록 권장되고 있고, 이것은 나름 필요한 실무적 스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안이유, 제안설명의 지나친 간결화는 안건 자료를 인쇄할 때 종이와 토너를 절약하는 미미한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입법산업에 요구되는 학자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북돋아주는 데에는 일말의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따지고 보면, 회의를 하기 위해 종이로 출력해야 하는 경우에도, 분량이 열장 백장 차이라면 혹여 모를까, 지금처럼 반 페이지에서 두서너 장 정도 더 늘린다고 해서 그것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더군다나, 종이 출력에 기반한 현재까지의 심사 문화조차도 4차 산업혁명 기술에 기반하여 디지털 환경 중심으로 원칙화 하고 전환할 필요도 있습니다.

그런데, 제안이유의 과도한 간결화는 이른바 ‘입법의 경제성’이라든지 상임위 회의와 소위원회 심사의 효율성에도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의원이 제시하는 제안이유가 너무 추상적이고, 두루뭉실하고, 성의 없고, 꾸역꾸역 겨우 10줄 정도 억지로 만들어낸 듯한 부실함이 있기 때문에, 이것을 보완하려고(물론 다른 이유도 있지만) 예산처 비용추계서, 조사관 검토보고서 등등 추가적인 인력과 시간과 부대비용 투입이 파생되고 있는 것입니다.

법률안 제안설명 초간단 작성례(본 기사의 문제의식과 위 법안의 입법취지는 무관함)

의원이 회의 전에 공부를 너무 안 하고 들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국회 상임위원회 소위원회 회의에서도 의원들이 법안을 슬쩍 읽고도 이해가 안 되어 되묻고 또 되묻는 진풍경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도 같은 연유일지 모릅니다. 

그 짧은 글을 읽고 제도개선과 제도창설의 필요성을 간파했다면 대단한 일일 수 있겠지만, 딱 쓰여있는 대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한자에서 한글로 표기방식이 바뀐 것 외에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달라진 것이 거의 없는 지금과 같은 법률안 작성 방식, 의안 서식만으로는, 문제점에 대한 실태 분석 데이터도, 정책의 과학적 분석 결과를 보여주는 인포그래픽도, 프로세스 마이닝도, 영상은 고사하고 현장을 보여주는 사진 한 장조차도 담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그러할진대, 민생 현장에서 일어나는 시민들의 억울한 사연과 상처와 절절한 애환사들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런지 의문입니다.

법안 작성을 실질적으로 보필하는 보좌진, 법제관, 입법조사관 등 보좌 인력들의 인생 경험이나 사회 현상을 탐구하는 인문학적 통찰이 깊어질 필요도 있겠습니다. 더불어 업무량에 시달리는 고생스러움도 당연히 알아주어야 하겠습니다.

법률안 제안설명 초간단 작성례 (본 기사의 문제의식과 위 법안의 입법취지는 무관함)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안이유문의 요식화, 짜내기식 제안설명, 막연히 공익적이고 국가경제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퉁’쳐버리는 초간단 제안설명, 처삼촌 벌초하듯 천편일률적인 관용문구로 채워진 제안설명문 만은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법률안 제안설명이 감성적인 에세이, 공격적인 (규탄)성명서, 회고적인 일기, 장황한 대하소설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안설명의 지나친 압착화와 간략화는, 국민의 알권리를 교란하고, 간결주의 뒤로 진짜 입법화 의도를 은폐하고, 양적 실적화의 편의성만을 거들어줄 뿐이라면, 이제는 정말 뭔가 변화를 주어야 할 때가 아닐까 사료됩니다. (연재 계속)

 

이경선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 헌법, 행정법, 법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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