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애리 변호사(이주민지원센터 친구 운영위원)

▲임애리 변호사
【의회신문】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여성과 그의 자녀는 귀화하지 않아도 남편이 사망할 경우 남편의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 결혼으로 맺어진 부부의 연은 국적과 상관없이 사망 후에도 지속되는 것이 당연하며 보편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의외로 외국인 여성들의 상담 중에서는 위와 같은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신의 권리를 방어하지 못해서 상속권을 침해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

법적 보호가 절실한 경우로 여기서 소개할 만한 사례는 시댁 식구들로부터 상속협의분할을 강요당한 경우이다. 한국인 남편과 6년 전 결혼한 중국 동포 진OO 씨는 남편의 사망 후 아직 성년이 되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시댁에서 최근에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은 진 씨를 찾아와, 진 씨에게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고 진 씨와 아이들의 가족관계증명서, 주민등록등본, 기본증명서, 진 씨의 인감증명서 등을 요구하였다. 진 씨는 당황한 와중에도 한국에서 인감증명서를 요구하는 경우는 중요한 법률적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변호사를 찾아 자문을 구했다.

법적으로는 상속인이 피상속인의 사망 전에 이미 사망한 경우, 상속인의 배우자와 그 자녀들이 ‘대습상속’이라고 하여 피상속인의 재산 중 상속인의 상속분만큼을 상속받게 되어 있다. 앞에서 소개한 진 씨 사례에서, 시댁 식구들은 진 씨와 아이들 몫의 시아버지의 재산을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하여 각종 서류들을 요구했던 것이다. 여러 명의 상속인이 있을 때, 아무리 공동상속인이라도 다른 공동상속인의 상속분을 침해할 수는 없지만 언제든지 공동상속인들 전원이 협의에 의하여 상속재산을 상속인 중 1인 앞으로 귀속시키는 등의 자유로운 분할이 가능하다.

공동상속인들 전원의 동의가 있다면 상속인 일부는 재산상속에서 배제하고 나머지를 공동상속인들끼리 나눠 갖기로 하는 협의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공동상속인인 시어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은 사망한 남편의 상속분을 대습상속한 진 씨와 아이들의 형식적 동의를 받기 위하여 진 씨의 인감증명서 등 서류를 요구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만일 위 사례에서 진 씨가 변호사를 찾아오지 않고 순순히 시댁 식구들에게 서류를 내어주었다면 어떻게 될까. 시댁 식구들이 진 씨에게 서류를 요구하면서 ‘시아버지의 상속재산을 처분하기 위해 진 씨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사전에 설명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 씨의 동의를 취소하고 상속재산분할의 효력을 다툴 수 있다고 본다. 다만 형식적으로 유효하게 성립한 동의를 취소하려면 진 씨가 동의의 내용 자체를 몰랐고 그 내용을 알았더라면 동의하지 않았으리라는 점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다.

설령 진 씨의 동의가 유효하다고 인정되더라도 시댁 식구들의 상속재산분할 협의는 무효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미성년인 진 씨의 아이들이 공동상속인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 씨의 남편이 사망하여 진 씨가 아이들의 단독 친권자가 되더라도, 진 씨가 아이들을 대리하여 상속재산분할에 동의할 수는 없다.

판례에 따르면 미성년자와 친권자가 동순위로 공동상속인이 된 경우에 미성년자의 친권자로서 상속재산분할협의를 하는 것은 ‘이해상반행위’로서 허용되지 않는다. 이때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 미성년자인 아이들 각각의 특별대리인을 선임하여야 하고, 이러한 절차를 밟지 않고 진 씨가 대리한 아이들의 상속재산분할에 대한 동의는 무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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