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안 年內 처리 사실상 무산, 자동 폐기될 수도
박근혜 정권의 핵심정책, 야당은 '노동 改惡' 주장

▲ 월드피스자유연합, 4대개혁추진국민운동본부, 자유통일연대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3차 국회 앞에서 국회의원에 전화걸어 노동개혁 입법 촉구 퍼포먼스” 를 펼치며 노동개혁 입법을 촉구하고 있다.
【의회신문=정행산 주필】최소 15만개의 신규 청년 일자리를 창출(한국노동연구원 분석)할 수 있는 근로기준법을 비롯해 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기간제법⋅파견법 개정안 등 이른바 ‘노동개혁 5대 법안’이 정부⋅여당과 야당 간의 팽팽한 줄다리기로 연내 처리가 사실상 불투명해졌다.

이 법안의 연내 처리가 불발돼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내년 4⋅13 총선 등 정치일정과 맞물리면서 노동개혁은 표류할 가능성이 크다. 해를 넘기면 정치권은 총선정국으로 돌입하기 때문에 노동관련 법안 처리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면 19대 국회 마감과 함께 이들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19대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인 12월9일은 이미 지나갔고, 여당은 12월 임시국회를 열어 법안을 재논의하려 해도 야당과의 합의가 전제돼야 하는데 야당을 설득할 ‘협상의 지렛대’가 마땅찮은 상황이다.

▲ 지난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개혁입법 희망 종이비행기 날리기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참석자들이 청년일자리 희망 메시지가 담긴 종이비행기를 국회를 향해 날리고 있다
야당은 ‘노동개혁법’이 아니라 ‘노동개악(改惡)법’이라며 특히 기간제법⋅파견법 등에 대해 ‘절대 불가’ 입장을 천명하고 있다. 이에 반해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의 본 취지를 살리려면 반드시 노동개혁 5대 법안은 ‘선별처리’가 아니라 ‘일괄 처리’ 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의 고민은 법안을 단독으로 강행 처리할 수 없는 현실적 제약에서 시작된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정부 주도 입법안은 야당 동의 없이 국회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관인데, 환노위는 사실상 ‘야당 천하’나 다름없다.

환노위의 위원 수는 여야 8대8 동수(同數)인데다 위원장은 노조 출신인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맡고 있다. 우원식⋅은수미⋅장하나 의원 등은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 소속으로 노동문제에 있어 야당 내에서도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의원들이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이 좌초될 위기에 놓이면서 청년실업 악화 등 그간 예견돼 온 후폭풍이 줄줄이 닥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당장 내년부터 ‘60세 정년’이 시행되는 데다, 올해부터 오는 2018년까지 20대 인구가 해마다 3만~6만 명이 증가하는 인구 구조상의 문제까지 겹치면서 “향후 3~4년간 청년고용 대란(大亂)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노동개혁은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의 ‘대표 상품’으로 추진해온 핵심정책이다. 노동개혁법안이 좌초될 경우 우리 경제 전반에 미칠 부정적 여파는 작지 않다. 이들 법안이 끝내 처리되지 않으면 당장 15만개에 이르는 신규 일자리 창출 기회가 사라지게 된다.

▲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인제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이 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개혁 5대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촉구한 뒤 기자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 한국경제 활성화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

청년 실업 악화뿐 아니라 다른 뇌관들도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노동개혁은 청년일자리 창출은 물론 침체에 빠진 한국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절체절명의 과제다. 이것이 무산되면 그 후폭풍은 엄청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노동시장이 중병이 들었다는 건 모두 다 아는 사실인데 약 하나 제대로 써보지 못하게 된 상황”이라는 비판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연내에 노동개혁을 완수하겠다고 설득해 대기업들이 올해 신규채용을 무리를 해서 늘린 경향이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신규채용 규모가 대폭 감소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당초 재계는 경영부담이 늘더라도 산업현장의 혼란을 막기 위해 법안을 수용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노동개혁에 꼭 필요한 기초적 수준의 5개 법안조차 무산 위기에 놓이자 기업경영과 관련한 운신(運身)의 폭이 크게 좁아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특히 내년도 인력 확보와 운용, 투자계획 수립이 힘들어지게 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주당 68시간인 현행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줄이고, 초과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특례업종의 수를 현행 26개에서 10개로 축소하는 근로기준법이 통과될 경우 기업들이 줄어든 근로시간에 해당하는 만큼의 신규 일자리를 11만~19만개 창출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길 것으로 분석했다.

법 개정이 안 되면 지난 9월15일 노사정 대타협 등을 계기로 내년 신규채용 규모를 금년 대비 13% 늘리고 “2017년까지 16만개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한 국내 주요 그룹들의 약속도 지켜질지 의문이다. 법 개정이 안 돼 경영여건이 불확실해지면 기업들로선 채용규모를 늘리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재계는 노동개혁 5개 법안의 연내 통과가 어려워지자 “무엇보다 국내외 업체가 내년도 투자⋅생산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마당에 법 통과가 늦어져 투자와 고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면서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 산업계 전반의 경쟁력 강화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가경쟁력강화포럼 '노동시장개혁법과 경제활성화법, 지금 결단해야 합니다'가 열리고 있다.
◇ 야당은 애초부터 노동개혁 뜻 없었다

여야는 지난 3일 ‘노동개혁 관련법안 논의를 즉시 시작해 12월 임시국회(12월10일~1월8일)에서 합의 처리한다’고 합의했었다. 그러나 여야 합의에서 언급된 임시국회 기간 중 어느 날 ‘합의 처리’한다는 ‘구체적인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야당이 합의문에 구체적인 시점이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워 12월 임시국회 기간에도 노동개혁 논의를 아예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야당은 애초부터 노동개혁에 뜻이 없었다. 시간을 끌어 입법을 무산시키겠다는 속내를 여러 차례 드러내기도 했다.

노동 5법안 가운데 여야 이견이 큰 법안은 비정규직 관련법인 ‘기간제 근로자 보호법’과 ‘파견근로자 보호법’이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기간제 근로자 보호법과 파견근로자 보호법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거꾸로 된 법안”이라며 “비정규직과 관련한 법안을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확고한 당론임을 다시 한 번 천명한다”고 했다.

정부⋅여당은 비정규직 고용 안정을 위해 35세 이상 기간제 근로자(비정규직 근로자) 사용기간을 현재의 2년에서 본인이 희망하면 최대 4년까지 근무할 수 있게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또 금형⋅주조⋅용접 등 뿌리산업에서 파견업무를 확대하면 최대 1만3천여 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새정치연합은 5대 법안과는 별개로 자체적인 비정규직 보호정책까지 내놓으며 여야 협상 추진의 힘을 빼고 있다. 야당이 마련했다는 노동개혁 대안법안은 공공부문 청년고용할당제를 확대하고 청년구직촉진수당을 신설하는 등의 내용이다. 노동 유연성 제고라는 노동개혁의 본래 목표와는 거리가 있다.

이 개혁안에는 비정규직의 고용제한 제도를 현재의 기간제한에서 사유제한으로 바꾸기 위해 별도의 사회적 대타협기구 구성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새누리당은 새정치연합이 내놓은 4대 개혁안에 대해 “무조건 발목부터 잡고 보자는 꼼수”라고 공격했다.

노동개혁 법안이 처리되지 않으면 그 타격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청년들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고용 절벽’에 서 있는 우리 사회의 수백만 명에 이르는 청년들은 지금 피를 토하는 듯한 절박한 심정으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

▲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노동개혁청년네트워크 회원들이 '노동입법포기, 19대국회 사망' 근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안타깝고 답답한 새정치민주연합의 헛발질

야당의 존재이유는 집권여당과 협조하면서 여당의 독주를 견제하고 정부를 감시 감독 비판하여 국정을 바른 길로 이끄는 데 있는 것이지, 사사건건 트집을 잡고 반대를 위한 반대만을 일삼으며 국정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데 있지 않다.

정당이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다수 국민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국민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지하고 그에 맞춰가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국민이 진저리를 내고 있는 치고받는 집안싸움은 차치할지라도, 제1야당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했거나 포기함으로써 국민의 기대를 외면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국민에 대한 배신’이 아니겠는가? 우리 국민은 본디 야당에 관대하고 호의적이었다. 웬만하면 야당의 문제들을 덮어주고 싶어 한다. 이 땅에 민주화의 물꼬를 튼 것이 야당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많은 국민이 청와대의 유아독존적 자세와 여당의 무능력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 대통령은 야당을 어떻게 응대하고 다룰 것인가를 고민하는 모습은 보여주지 않은 채 국회를 향해 직사포를 쏘아대고 있고, 이런 다급한 상황에서도 불임(不姙) 여당은 대통령의 눈치만 살피는 무능력한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야당은 신규 일자리가 최대 69만개 창출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는 서비스산업발전법을 비롯해 ‘원샷법’, 노동 5법 등 주요 법안의 처리를 엉뚱한 명분을 내세워 반대하고 있다.

이른바 ‘경제활성화법’ 가운데 하나인 ‘서비스산업발전법’은 2011년 12월30일 처음 발의되었으나 심의도 해보지 않은 채 국회에서 낮잠만 자다가 18대 국회 임기만료와 함께 자동 폐기되었고, 19대에 다시 발의되었으나 야당이 “보건⋅의료 민영화 우려가 있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을 펴며 반대하는 바람에 4년째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노동 5법도 마찬가지다. 국회가 지난 9월 노사정(勞使政) 대타협까지 했는데도 이제 와서 새정치연합이 ‘노동개악(改惡)’이라며 노동 5법 처리를 무산시키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국민 대부분은 노동⋅경제 관련 법안들이 조속히 처리되어 ‘청년 고용절벽’ 문제와 경제에 다소나마라도 숨통이 트이기를 바라고 있다.

이 법안들이 통과된다고 해서 청년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늘어 지금의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거나 경제가 확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혁을 개을리 하거나 외면한다면 주저앉는 경제와 청년고용 절벽에 어떤 반전(反轉)의 계기도 만들어낼 수가 없다.

새정치연합은 국민의 마음을 사려는 노력은 포기한 채 헛발질만 계속하고 있다. 국민은 이 나라 제1야당이 이들 법안들을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며 반대하고 ‘청년고용 절벽’을 외면하는 진짜 속셈을 알 수 없어 답답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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