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입자장) 기능보유자 정춘모 장인이 화로에 달군 인두로 양태의 트집을 잡고 있다.
【의회신문】입산(笠山) 정춘모(鄭春模·77) 선생님은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 일 입자장(笠子匠)입니다.

갓 일은 갓을 만드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대나무를 삶고 결대로 쪼개 머리칼같이 가느다란 대나무실을 만들어 갓의 태인 양태(凉太)를 엮는 양태 작업, 말총으로 모자집인 대우를 짜는 총모자(總帽子) 작업, 양태와 총모자를 모아 인두질·어교칠·먹칠·옻칠을 반복하며 갓을 완성하는 입자 작업 등 3가지로 나뉩니다.

양태일 24개 과정, 총모자일 17개 과정, 입자일 10개 과정 등 모두 51개에 달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갓 하나가 비로소 완성됩니다. 세 명이 분업해 갓 하나를 만든다 해도 2~3개월은 족히 걸립니다.

선생님은 입자장이지만, 이 세 가지 갓 일을 다 하는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장인입니다.

서울 삼성동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내에 있는 공방에 도착하니 선생님이 화로에 달군 인두로 양태의 트집을 잡고 옻칠을 하고 계십니다.

1958년 첫눈에 갓 일에 매료된 선생님은 체계적으로 기술을 익히기 위해 낮에는 갓 일을 배우고,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며 청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잠자는 시간과 공부하는 시간을 뺀 15시간을 갓 일하는 데 모두 쏟으셨다고 합니다.

가르침을 준 스승들이 모두 돌아가신 뒤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생계 문제 사이에서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돼야 전통을 이어갈 수 있는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고 갓의 수요가 없다 보니 경제적 어려움을 겪으셨던 것이죠.

자구책으로 서울로 이사해 농사를 지으며 농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이 농장을 팔아 산 부동산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갓 일을 지속해 왔습니다. 마침내 1991년 5월, 갓 일을 시작한 지 33년 만에 보유자 인증을 받았습니다.

▲ 국가지정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입자장) 기능보유자 정춘모 장인이 옻칠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60년 가까이 갓 일을 하고 계십니다. 선생님뿐만 아닙니다. 양태 이수자인 부인 도국희(61) 여사, 입자 전수조교인 아들 한수(37)씨 등 가족이 함께 갓 일의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사라져가는 500년 통영갓의 전통을 잇는다는 것이 힘들지만 보람찹니다."

돌아오는 길, 선생님의 장인 정신이 담긴 낮지만 단호한 음성이 귓가에 맴돌았습니다.

앞으로도 전통을 지키고 이어가겠다는 굳은 의지에 고맙고 죄송하고…. 그래도 안심이 된다면 제가 너무 이기적인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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