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85조와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의 폐해

'전직 대통령'과 '철학 있는 사회'

 

헌법 제85조(전직대통령 예우)와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이하 ‘전직대통령예우법’)이 있음으로 하여 파생되는 문제들을 면밀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헌법 제85조의 존치는 첫 번째로, 공화국 체제를 택하고도 온 사회가 여전히 왕에 준하는 대통령이라는 권위적 절대적 존재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추종하는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현직대통령으로도 모자라, 전직대통령이라는 존재까지 각인시키면서 사회 전체를 상하 위계구조로 층위화, 서열화시키는 근대성을 떠받들게 하고 있다.

두 번째로,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고위직 계급장에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퇴직 이후부터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우대하는 것이 정당한지 의문스럽다. 개인에게는 치열한 권력투쟁 과정에서 얻어낸 값진 가문의 영광이자 족보에 오를 일이겠지만, 국민의 입장에서는 오로지 희생을 각오하고 나선 봉사자일 뿐이다. 최고위직 계급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짜 얼마나 사회에 공헌하고 발전을 이끌었는가, 얼마나 희생하고 또 희생했는가, 얼마나 시대정신을 성실히 이행하고 사회적 가치를 생산했는가 하는 역사의 평가, 국민의 평가에 맡겨져야 할 일이다.  국민의 감동과 그리움과 존경으로 예우의 수위가 결정되도록 해야 한다.

세 번째로, 헌법은 제11조에서 ‘①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②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 제85조와 전직대통령예우법은 암묵적으로 ‘전직대통령 명문家’, 왕족에 준하는 ‘대통령族’를 형성시키는 폐단을 낳고 있다. 전직대통령들에 대한 현재와 같은 예우 체계가 개선없이 계속되어 간다면 우리 사회가 떠받들어야 하는 대통령家, 대통령族은 임기가 끝날 때마다 누적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한편, 전직대통령예우법에 의한 예우 수준도 너무 과도하다.

전직대통령은 현직이 아니므로 대통령 직무 수행에 준하는 연금을 지급해야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보수연액의 100분의 95를 연금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지급하는 것은 부당한 전관예우이며 불로소득이다. 전직대통령이 사망하였는데, 유족에게 대통령 보수연액의 70%를 지원하는 것도 불합리하다.

이미 대통령직을 수행한 분들 대부분은 연금 지급 없이도 능히 ‘품위있는 삶’을 영위할 만큼의 재력과 조력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현행 공무원연금제에 따라 실질 재직기간에 약간의 인센티브를 가하는 정도의 연금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일부러라도 국민연금 기준에 따라 책정해야 할 필요도 있다.

전직대통령 본인 및 가족에 대한 치료 지원 제도도 문제가 있다. 일반 국민의 생명과 건강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할 이유가 없다. 누구의 건강과 생명이 더 소중하다는 차별적 발상부터가 반민주적이다. 건강보험제로 충분하다.

전직대통령예우법이 ‘그 밖에 전직대통령으로서 필요한 예우’라는 모호한 여지 규정을 두고 있는 것도 잘못됐다. 일반 국민이 예상할 수 없는 소소하지만 다양한 할인, 면제, 특혜를 누릴 수 있게 해주는 이 여지 규정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입법 방식이다. 언제고 악용될 소지가 있다.

묘지관리 지원 규정의 경우에도,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경우에는 다소 문제가 덜해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대통령까지 역임한 사람의 묘도 나름의 역사적 가치가 있고, 오랜 시간이 지나면 문화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을 했던 분의 묘를 중요시해야한다는 관념은 왕릉처럼 전근대적 숭배문화의 연장일 수 있다.

국민 다수가 자연장(수목장) 등 대안장묘를 택하고 있는 마당에, 특별히 대통령을 역임한 분만이 재래적인 묘지장을 선호하고, 명당 자리 모시기를 고수해야 할 것인가. 오히려 대통령(유족) 스스로 자연친화적인 장을 택함으로써 만인에게 본을 보여주는 것이 역사와 국민의 가슴에 더 오래 기억될 수 있다.

전직대통령과 배우자에게 지원되는 비서관과 운전기사 지원 제도도 문제가 있다. 전직대통령이 추천하여 임명하는 비서관 3인은 의전과 실무 지원 인력으로 쓰여지기엔 너무 과도한 고위직공무원 신분이다.

더군다나, 특별한 정치적 연고가 있거나 정치실세들로부터 알음알음 천거되는 불투명한 인력 충원 구조는 일종의 ‘측근 문화’, ‘계보 문화’, ‘가신 문화’를 지속시키고 있다. 음서제적 발탁 관행도 문제거니와, 사회 일반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정치권 이너써클 구성원들의 고위직으로의 초고속 승급 등 정치적 성장을 돕는 우회로로 활용되고 있다. 의전 중시 풍토를 조장하는 문제도 있다. 가족친지가 다 있을 터인데도, 굳이 비서관이 필요하다면 인력고용을 위한 임금상당액만 1~2인 이내로 지급하고 공무원직 신분 부여는 폐지해야 한다. 공무원 신분이야만 잘 모실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전직대통령예우법상의 현행 제도 가운데 덩어리 문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은 기념사업 지원 규정이다.

전직대통령의 업적과 철학을 기리고 학술적으로 재평가하고 하는 일련의 학술활동, 저술활동, 기록활동, 혹은 전시활동 등은 권장될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를 역사문화사업으로, 문화콘텐츠 등으로 확장시키는 사업도 나름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생산적인 접근으로서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념사업이 전직대통령의 ‘변형된 우상화와 숭배화’로 변질되는 경우가 흔하다. 각종의 기념관을 짓고, (이를 공영화하든 위탁화 내지 사영화하든) 기념관 등의 유지보수와 운영을 위해 수백억의 국민의 혈세 재정을 지출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진지하게 회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외연 중심의 방식이 아니고서도 절제있고 기품있게, 인문적인 기념사업들을 얼마든지 강구할 수 있다. 기념관은 사이즈가 중요한 게 아니다. 한적한 산골에 단층으로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을지라도, 존경의 마음이 우러나는 그런 대통령이었다면, 뜻이 있는 국민 누구든지 기꺼이 발품을 들여 찾아갈 것이다.

특히나, 기념관이나, 기념사업을 하는 민간단체 지원, 기념재단 설립 지원 등을 하면서, 그 재정 지원이 특정 대통령을 정점으로 결집되어 있는 특정 정치세력과 계파의 정치적 결속력을 다지는 아지트, 놀이터, 사교와 교류 비용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국민의 혈세가 기념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특정 정치세력의 이너써클 유지와 계보화를 돕고 특정 정치세력의 정치활동의 간접비용으로 쓰여지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현재로선 구축되어 있지 않다. 

마지막으로, 헌법 제85조를 비롯하여, 전직대통령예우법이 갖는 가장 중차대한 문제점이 하나 있다. 바로 전직대통령이 오로지 ‘보호받고 예우받는 고결한 존재’로만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을 한 사람이니까, 대통령을 한 사람의 가족이니까 우아하게 품위를 유지하며, 격조있는 행사에 초청받고, 의전받고 하는 그런 존재로만 살게 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일관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리더는 대접 받기만 하는 존재, 명절 때마다 절 받는 존재가 아니라, 끈임없이 헌신하는 존재, 끈임없이 검약함을 보여주는 존재, 끈임없이 낮은 곳과 누추한 곳을 찾아다니며 한국사회가 들여야봐야 할 논제들을 조명해주는 철학자와 같은 존재, 끈임없이 사회의 어둡고 험하고 열악한 곳을 보살피는 봉사자와 같은 존재다.

모두들 지위향상과 지대추구에 천착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직대통령이었던 사람이 소박한 농부의 위치로 돌아가 묵묵히 밭을 일구는 모습을 보여주고, 묵묵히 국토기행을 하며 산하 곳곳의 아픔과 상처들을 조명해 주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주도적으로 창출하는 사업가로 일신해 주고, 부족한 외교력을 보완하는 윤활자 역할을 해주는 그런 모습이 절실한 것이다.

전직대통령이 국민이 공감하는 비정치적인 사회공헌활동이나 공익사업을 추진하고자 할 때,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그런 프로그램 규정들이 전직대통령예우법에 담겨지고 채워져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직대통령 등의 사회공익활동 지원법’으로 전부개정 되던지 해야할 것이며, 그게 아니라면 폐지되는 것이 합당하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른 사람들, 안정된 지위에 오른 사람들이 모두 저마다 입법과 법제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과 특권과 예우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일반 서민들과 사실상 사회적 신분 격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직대통령부터 한없이 소탈한 일반인으로 돌아가고자 할 때, 한국사회는 진짜 '철학 있는 사회'가 시작될 수 있다. 그런 분이라면 온 국민이 충만한 존경심으로 앞다투어 예우하게 될 것이다.

 

 

이경선

논설위원 겸 부사장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 헌법, 행정법, 법정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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