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혁신 특집좌담] 뒷담화와 모략의 시대, 어떻게 할 것인가

-교수신문, 의회신문 공동진행 -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얼굴만 돌리면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모함하는 행태가 만연한 일상이 되었다.

까페마다 음식점마다 대화의 주제는 온통 타자를 향한 험담뿐이다. 행복, 아이디어, 혁신, 낭만, 사랑, 인생 등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뒷담화가 가득하다는 것은 내면이 비어있음을 뜻한다. 경제적으로 몸집이 커졌는지는 모르나 한국사회는 지금 정신적으로 가장 가난하고 삭막한 사회다.

서로에게 분노하고, 서로를 지옥으로 여기는 한국사회.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어디서부터 고쳐야 하는가.

교수신문과 의회신문은 <뒷담화와 모략의 시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서교동 북살롱에서 소박하게 좌담을 가졌다.

김만흠 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이 진행을 맡고, 박상병 시사평론가, 이경선 서강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행정법무학과 교수, 성봉근 서경대학교 법학과 교수, 손애경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융합콘텐츠학과 교수, 정재룡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이 모여 한국사회의 불편한 내면, 삭막한 풍경들을 진단해 봤다.

 

● 좌장 김만흠

오늘 주제가 조금 특별하다. 뒷담화와 모략이 횡횡하는 한국사회에 대한 진단을 해보는 시간이다. 우선 오늘의 문제의식과 한국사회 현실을 개괄적으로 점검해 보는 게 필요할 듯하다.

■ 이경선

문제가 없는 시대란 없겠지만, 2020년 현재 한국은 사회 전반에 걸쳐 심각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거의 모든 경제지표들이 위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도 사회도 온통 ‘진영 줄서기’, ‘각자도생’, ‘이익 챙기기’로 치닫고 있다.

문화 분야마저도 돈벌이에 물들고 창의성을 상실했다. 좌우 진영 간의 편 가르기 속에서 중간계의 다수 서민들은 기댈 곳을 못 찾고 부유하고 있다. 사회혁신 목소리를 내야 할 중도개혁적 지식인들도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 되는 것, 공공기관 계약직으로라도 들어가 '1등 시민 계급'이 되는 것이 꿈인 세상이 되어 버린 것 같다. 남과 비교하며 좀 더 안락함과 우월감을 느끼는 위치를 점하기 위해 서로 천박한 경쟁을 벌이는 시대가 됐다.

■ 정재룡

사회 곳곳에서 못 살겠다는 아우성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남북 관계는 전쟁 전야로 치닫고 있다. 신지역주의라 할만큼 동서 지역 간 대립은 다시금 심화되고 있다. 정부 별정직 정무직 공무원 일자리 차지하기 경쟁에 미친 진영패거리 정치 언저리언들의 전횡은 내전 상태라 할 만하다.

위선이 공정과 교양으로 둔갑하고, 상식과 법치주의는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격차는 역대급 수준으로 벌어졌으며, 실업수당 신청, 폐업 신고, 공실률, 복권 판매액은 집계 이래 최고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전국에 걸쳐 일가족 자살 소식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정치권과 오피니언 리더 그룹의 행태는 위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행태가 만연해 있다. 상식의 문제이고 사회 윤리의 문제인데도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집단적인 위선 행위들이 연일 반복되고 있다. 심지어 법치주의의 틀조차 곳곳에서 붕괴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국사회는 지금 총체적 정신적 질환을 앓고 있는 것 같다.

■ 성봉근

최근 우리 사회는 각종 갈등에 대한 해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정치, 사회,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 매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로 다른 견해와 입장을 들어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시도하기 보다는 성급하게 판단하고 비판하는 것이 앞서고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접근을 하며 상호 설득의 노력을 기울이지 못하고, 감정적이고 불안정한 접근을 하는 패러다임이 만연해 가고 있다. 이는 신문이나 방송 등의 전통적인 매체를 넘어서 정보화 사회에 이르러 SNS나 홈페이지 등의 강력한 전파력을 매개로 하여 더욱 확산되어 가고 있다. 소송이나 실력행사 등 대립적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지향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 이경선

사회적으로 조금 책임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기 자랑을 담은 사진과 자기 인맥 자랑뿐이다. 일반인들이야 인스타그램에서 ‘나 행복해요’ 하고 자랑질이든 행복감이든 충만해 할 수 있겠지만, 중고위직 공직자, 교수 등 연구자, 제도권 내 정치인들은 본을 보여야 하는데 그런 모습들이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SNS 행태만 놓고 보더라도 한심스럽다. 민생의 불편과 피폐함을 조명하지 않고 ‘나 국회의원 됐어요’, ‘나 좋은 유럽 여행 왔어요’ ‘나 지금 행사장 왔어요. 나 회의 하는 모습 근사하죠’, ‘나 방송 나왔어요’ 하면서 자기 자랑질 하기 바쁘다. 모 남성 의원은 자신의 외모를 찍은 사진만 연속해서 올려댄다. 모 여성 의원은 자신의 미모 자랑 포스팅만 내내 하다가 임기를 마쳤다.

위선과 허영, 가식적인 대화로 가득한 인간관계와 처세 스트레스에 지칠 대로 지친 사람들, 뭘 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한국사회에 실망한 사람들은 이제 저마다 자기 피안의 세계를 찾으려 하고 있다. 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도 부쩍 늘었다.

힐링, 워라벨, 카렌시아, 욜로, 새로운 아나키즘 기조, 저녁이 있는 삶, 연결되지 않을 권리(언텍트) 등이 사회 키워드로 회자되어 온, 회자되고 있는 이유도 각박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소시민들의 갈망이 팽배해진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 정재룡

지금은 대중 민주주의 시대이다. 대중 독재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과거 제왕적 총재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거물 정치인이 정치를 주도하던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일반 대중 다수가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SNS가 활성화되면서 그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 2017년 대선에서 갑툭튀 ‘MB 아바타’는 SNS에서의 모략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정당의 공천이 하향식으로 이루어지고 당원은 동원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반 당원이 공천을 주도하는 상향식 공천이 이루어지고 있고 당 대표마저도 당원들을 두려워하고 있다. 일반 대중이 정치를 주도하게 된 것은 이러한 상향식 공천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조국 사태는 일반 대중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급조된 열린민주당이 별다른 명망가도 없이 3석을 차지한 것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모략이 횡행하는 것은 이런 시대 환경의 변화에 기인하고 있다. 정치적 승리를 위하여 일반 대중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하여 단순한 험담을 넘어 모략이 전가의 보도처럼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정치 영역에 그치지 않고 어느 조직이나 활동 영역에 관계 없이 사회 각 분야에 광범위하게 일반화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직장에 파벌이 있을 경우 다면평가가 파벌의 모략 때문에 왜곡되기도 한다.

 

● 좌장 김만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뒷담화와 음해, 모략의 심각성을 화두로 삼아야 하는가?

■ 성봉근

현대 인문학과 법학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복잡하고 다양하며 커져가는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어떻게 하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기존의 법과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갈등이 여전히 잘 해소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으며, 나아가서 이를 위한 해결방향이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 및 문화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적 갈등은 결국 관점이 상이한 데에서 발생하게 되는데,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관점을 극복하고 사회적 갈등의 해소를 위해서는 결국 상이한 관점을 교환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하버마스는 대화를 상호 할 수 있어야 왜곡이 없는 소통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담론 내지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관점의 교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져서 합의가 도출되며,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뒷담화와 음해, 모략 등 어두운 논의가 힘을 얻게 되는 이유는 바로 관점의 교환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담론과 대화의 문화가 결핍되고 부족하기 때문이다.

■ 이경선

한국 사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만나는 패턴이 매우 자연스럽지 못하고 경직되어 있다. 뻘쭘해 하는 정도를 넘어, 익숙하지 않으면 배척부터 하고 보는 못된 습생이 있다. 저 많은 까페마다 자세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의 대화가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테이블마다 온통 다른 사람에 관한 이야기, 정확하게는 험담이 대화의 주를 이룬다. 직설적으로 감정 섞인 대화도 있지만, 크게 감정 없는 척 점잖게 얘기하면서도 결국은 누군가를 문제로 삼는 대화들이다. 자신들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상인인데 다른 이들은 죄다 문제가 있고 모자라고 나쁘고 무례하다는 태도다. ‘만연해 있다’고 할 만큼 일상화된 뒷담화 풍경은 한국사회의 현실, 한국사회의 수준, 한국사회의 정서, 한국사회의 스트레스 정도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 정재룡

한국사회는 지금 모두들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중인 것 같다. 지독하게 인간관계를 힘들어 한다. 유튜브에서도, 대형서점에서도, 인터넷서점에서도 인간관계으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법을 논한 강좌와 책들이 폭발적으로 선호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한국사회의 일상인들은 현재 인간관계의 뚜렷한 해법을 찾지 못하고, 인간관계로 부터 벗어나려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또 다른 인간관계에 소속되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 일정한 무리에 소속되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외톨이가 된 것 같고, 소외당하는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 이경선

지나치게 과잉화된 뒷담화 사회라면 그것은 지옥이다. 서로가 서로를 질투하고 폄하하고 모략하는 데에 집중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풍토를 우리는 이제 정면으로, 담론의 하나로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출세, 과시, 경쟁, 권력, 물질, 소유 등이 아니라, 잔잔한 행복, 고요한 일상, 가족과 함께하는 삶, 자기계발과 여가, 자연과 함께하는 삶, ‘요리’가 있는 저녁, 낭만(혹은 ‘흥’)과 생활 감성, 자발적 고독, 인문적인 만남...행복, 혁신, 아이디어, 가족, 사랑, 낭만, 감성 등에 대해 나누는 대화, ‘다큐’스러울 것까지는 없지만 가볍지 않은, 진솔함을 머금은 대화 등....철학이 있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한 이들도 적지 않다. 정신없이 질주하던 한국사회가 한 걸음 주춤하고 있는 이 때에, 우리는 정말 제대로 달려왔던 것인지, 제대로 전진해 가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 볼 시점이 아닐까 싶다.

 

● 좌장 김만흠

한국사회가 유별나게 타인에 대한 이야기, 남을 헐뜯는 뒷담화를 즐기는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 정재룡

우리 사회에는 특히 사생활 모략이 횡행하고 있다. 그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우리의 전통적 관념에는 사생활과 공생활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치국평천하라는 공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생활에서 수신제가가 필수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남의 사생활을 지적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거의 없고 모략마저도 용인되는 풍토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전통적으로 실적주의의 기반이 취약하다. 어느 조직이든 상위직으로 올라갈수록 실무와 실적보다는 자기관리와 인간관계가 더 중요하다. 그러니 사생활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

셋째, 이를테면 이혼과 동거 등 사생활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지금은 이혼을 불온시하는 시대가 아니고 이혼율이 40%를 넘어 50%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아졌고 동거도 결혼 전 동거나 순수 동거가 대중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편견의 시선이 남아 있다. 특히 복수 이혼에 대한 편견이 큰 것 같다.

넷째, 솔직하지 못한 문화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고 그것에 맞추려는 행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위선과 허위의식이 있다. 의복 등에 유행이 강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것이 모략의 온상이 되고 있다.

다섯째, 우리는 지연, 학연 등을 고리로 뭉치는 파벌 문화가 있다. 개인과 개성이 존중되지 않는다. 파벌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하여 모략이 자행된다.

여섯째, 남의 성공을 질시하고 흠이나 불행을 감싸주기보다는 나쁘게 보는 폐단이 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라는 잠재의식이 있다.

■ 손애경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된다’는 성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처럼 뒷담화는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되는데도 불구하고 뒷담화를 안 하고 살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힘들다.

대중문화적으로, 뒷담화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뒷담화를 당하긴 싫은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한 콘텐츠들을 문화 속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뒷담화의 행위가 가져다주는 스트레스 해소의 심리를 잘 나타낸 술집 간판 ‘뒷담화’, 관전 심리를 이용한 타이틀 '뒷담화' 방송 프로그램, ‘뒷담화 컬럼’ 등 대중문화 속 곳곳에 뒷담화 콘텐츠가 즐비하다. 그만큼 사람들은 스스로 뒷담화를 생산 유통 소비하지 않더라도 대중문화를 향유하면서 뒷담화가 주는 배설의 쾌락을 한껏 대리체험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 박상병

뒷담화를 인류 역사 속에서 살펴 본 이론가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저서 <사피엔스>에서 뒷담화 이론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뒷담화는 만들어 내는 생산자만이 아니라 전달하고 유포하는 이들과의 관계가 아주 돈독해지는 공동체적 단결감이 강화되는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뒷담화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더 크고 안정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는데, 현대 사피엔스가 약 7만 년 전 획득한 이러한 능력은 사피엔스가 더욱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의미로도 보았다.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150명 정도라고도 한다.

또 유발 하라리에 따르면, 모든 신화와 이데올로기는 상상의 산물인데, 사피엔스는 그 허구를 믿으며 서로 협력하기 시작했으며 더 잔인해졌다고 한다. 이야기를 지어내 말할 줄 아는 사피엔스의 방랑하는 무리들은 동물계가 이제껏 만들어 낸 것 중 가장 중요하고 가장 파괴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인간에 대한 본질적 성찰, 정치에 대한 현실적 통찰의 결과는 “인간에게 덕과 부귀가 공존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허영심이 강하고 타인의 성공을 질투하기 쉬우며 자신의 이익추구에 대해서는 무한한 탐욕을 가진 자다”라고 말한다. 또한 “인간은 고마워할 줄 모르고, 변덕스럽고, 거짓말 잘하고, 남을 잘 속이고, 위험은 피하려 하고, 이익만 좋아한다”고 진단했다.

뒷담화는 결국 인간의 속성이자 본질이며 한계일지 모른다.

■ 손애경

우리 역사 속에서도 모략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뒷담화를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일연의 저서 <삼국유사> 기이편 무왕조 내용이 그것인데, 이 글 중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바로 무왕의 서동요이다. 서동이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얻기 위해 신라의 서울로 가서 음해성 동요를 지어 아이들에게 부르게 하고, 그 결과 선화공주가 귀양을 가게 되는 과정에서 결국 서동과 혼인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사 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에 탑재되어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모략이 성공하는 과정이 그 시대에도 어떻게 조성되었는지 잘 나타나 있다.

‘제30대 무왕(武王)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어머니가 과부가 되어 서울 남쪽 못가에 집을 짓고 살고 있었는데 못의 용(龍)과 관계하여 장을 낳고 어릴 때 이름을 서동(薯童)이라고 하였다. ...(중략)... 신라 진평왕(眞平王)의 셋째공주 선화(善花) 혹은 선화(善化)가 아름답기 짝이 없다는 말을 듣고 머리를 깎고 [신라의] 서울로 갔다. 마를 동네 아이들에게 먹이니 아이들이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었다. 이에 노래를 지어 여러 아이들을 꾀어서 부르게 하니 그것은 이러하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동요가 서울에 가득 퍼져서 대궐 안에까지 들리자 백관(百官)들이 임금에게 극력 간하여 공주를 먼 곳으로 귀양 보내게 했다. 장차 떠나려 하는 데 왕후(王后)는 순금 한 말을 주어 노자로 쓰게 했다. 공주가 장차 귀양지에 도착하려는데 서동이 도중에 나와 절하면서 장차 모시고 가겠다고 했다. 진평왕은 그 신비스러운 변화를 이상히 여겨 더욱 서동을 존경해서 항상 편지를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은 이로부터 인심을 얻어서 왕위에 올랐다.

이 이야기는 드라마의 소재로도 사용되었을 만큼 널리 알려진 내용인데, 선화공주에 대한 서동의 음해성 동요이야기야 말로, 현대 인터넷 가짜 뉴스 유포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은 대표적인 모략의 원조라 할 수 있다.

■ 이경선

최신 가십 관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들의 대화 양의 3분의 2가 뒷담화라는 분석이 있다. 뒷담화는 타자의 사생활이나 개인사에 대한 품평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단순한 품평, 객관화된 품평이 아니라 대부분 험담이라는 게 문제다.

험담은 주로 질투심, 복수심, 열등감, 이질감, 청의 거절에 대한 반감 등 다양한 감정들에 기반한다. 네거티브 바이럴 전략의 일환으로서 복수 효과도 있다. 자신의 감정과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자기와 친한 사람, 가까이 있는 사람이 타자와 가까워지는 것을 저지시키기 위한 의도도 있는 것 같다.

타자에 대해 간접적으로 알고자 함으로써 자기 생활의 안전과 이익을 영위하기 위한 일종의 정보수집 기능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뒷담화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게되는 기능도 주목된다. 뒷담화는 자기 스스로의 삶을 평정하는 다른 사람과의 비교과정이기 되기도 한다. 타자에 대한 나쁜 뒷담화를 듣게 되면 자신이 똑같은 뒷담화의 대상자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점검하고 방어하는 심리도 생긴다.

■ 성봉근

뒷담화는 사실 재밌다. 내밀한 뒷담화는 관심을 끈다. 그다지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화제에 끌려가게 된다. 뒷담화를 함께 나누다 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하게 된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뒷담화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심지어 뒷담화는 전염성과 중독성도 강하다. 선하고 교양이 있는 사람도 뒷담화의 공간에 함몰되어 허무하게 무너지고 맞짱구 치며 동조하게 되고(동조해 주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또한 전파자가 된다.

수다스런 아해들의 간의 소속감과 결속력을 다지는 힘도 있다. 직장이나 조직 내에서 일종의 종파와 세력, 이너써클을 구축하고 유지시켜 나가는 기제가 되기도 한다.

■ 이경선

특별한 목표나 가치 공유 없이, 일상에서 단순히 끼리끼리 무리짓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지능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다.

필요한 만큼 사회적으로 연대하고 교류하고 참여하는 것 이외에 자발적 고독과 창조적 몰입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오히려 지능이 높게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여러 연구결과에 의해서도 증명되고 있다. 역사를 만들어온 위인들 대부분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통제하고, 타자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필요한 만큼의 자발적 고립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이었다.

이런 측면을 전제하고 보면, 뒷담화는 그 사람의 나약함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의존성도 드러낸다. 작든 크든 소속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다고 표현해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뒷담화에 동조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싶은 두려움도 있는 것 같다. 뒷담화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들어나면 슬그러미 발을 빼고 자신들의 실언들을 회찰하지 않는다.

■ 정재룡

정이 많아서 그렇다고 하지만 오히려 정작 한국사회가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뒷담화에 천착하는 한국사람들의 의존성과 자존감이 매우 낮은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열등감, 위화감, 상대적 박탈감, 질투심이 많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이의 사생활, 프라이버시, 소소한 생활상을 일일이 품평하고 수근거려야 비로소 속이 후련해지는 행태는 정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니라 비정이다. 뒷담화의 당사자 조차도 뒷담화 당할까봐 무리짓고 있는 자리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모습들은 비극에 가깝다.

■ 박상병

우리나라 역사 속에서 아주 대표적인 뒷담화와 모략의 사례 몇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기축옥사(1589년)’의 경우다. 황해도 관찰사 한준(韓準)의 장계(狀啓)와 구봉 송익필의 음모와 모략을 주목해 볼 수 있다.

‘정여립 모반사건’은 선조의 콤플렉스와 구봉의 절망과 송강 정철의 원한이 겹쳐 일어난 음모적 사건이다. 송강에 의해 동인 세력이 사실상 초토화된 것은 음모와 모략 시대에 절정을 이룬 상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조선 최초의 방계(중종의 서손) 국왕인 선조의 콤플렉스와 무능이 더해서 최악의 참화가 빚어진 것이다.

음모와 모략이 분출하고 권력이 이를 이용해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한다는 것은 곧 정치사회적으로 갈등과 분열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이경선

뒷담화는 ‘끌어내리기’이기도 하다. 질투심에서 사적 감정에서, 못마땅함에서, 이질적 존재이기 때문에 나오는 험담, 악평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난 점, 훌륭한 점, 성공, 인기 등을 평가절하하고 궁극적으로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내려놓거나, 자신이 올라서려는 일종의 물귀신 습생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더 잘낫다고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유아적 발로이기도 하다. 조금 배웠다는 연구자들 조차도 다른 연구자를 유난히 헐뜯는 SNS를 올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젖어있다. 나름 엘리트층에 진입하고 출세했다는 천박한 욕망에 빠져 타자를 깍아내리고 SNS에 연일 뒷담화와 자랑질을 늘어놓는다. 역설적이게도 열등한 자아와 낮은 자존감이 엘리트주의와 만나 졸부 지식인의 민낯을 보여주는 듯하다.

■ 박상병

한국의 정치영역에서 뒷담화와 모략이 전횡하게 된 배경을 몇 가지로 나눠 이해해볼 수 있다. 우선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일제강점기에서의 국권상실은 공적 영역에 대한 불신과 절망을 의미했고, 공적영역의 붕괴는 뒷담화와 모략이 분출하는 정치적 토양이 되었다.

그리고 한국전쟁과 분단 과정에서 서로 간의 적대의식이 강화되었고, 적군과 아군의 편가르기가 강요되었다. 서로를 향한 적대시 문화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아군의 결속력 강화 수단이 되었다. 뒷담화와 음모, 모략은 그 자양분이 되었다. 이러한 적대시 문화는 군사독재정권의 권력유지를 위한 노골적인 수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에 대항해서 민중은 오히려 저항의 담론으로 뒷담화에 빠져들기도 했다. 반면에 권력집단은 그들의 권력기구를 동원한 언론 플레이로 뒷담화와 모략, 음모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면서 사회적 갈등과 모략의 시대를 심화시켰다. 민주화 이후에는 뒷담화와 모략의 기술이 기득권 세력의 각 부문별 저항 단위로 이동하면서 정치권을 비롯해 권력기구․언론․사회단체 등으로 그 범위가 확산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구조적 배경으로 보면, 중앙집권적 ‘승자독식 구조’가 뒷담화와 음모를 용이하게 만드는 풍토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대통령 권력을 장악한 그룹이 정치권력은 물론 정보․언론․여론 등 모든 것을 주도했다. 또한 거대 양당체제가 적대적 공생관계의 기본 프레임으로 지속되면서, 진영 내에서는 상대방을 향한 뒷담화와 음모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언론․지식․시민사회․지지층 등도 정치적으로 양분된 소통구조를 벗어나지 못했다. 음모와 모략이 던진 하나의 불씨가 금세 들불처럼 번질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이다.

경제 및 사회적 배경으로는 미디어 채널의 다양화 및 유투브 등의 매체가 대중의 관심과 조회수 등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시청률․구독자수․조회수 등이 곧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되는 미디어 환경이 뒷담화와 모략의 문화를 자극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친정부 성향의 언론 보도에 대한 강한 불신이 가중되면서 뒷담화와 음모를 생산해 내는 다른 비판적 언론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들었다. SNS 등을 통해 개인 및 소규모 그룹끼리 연결된 네트워크 사회가 되면서 뒷담화 문화가 최적의 유통 시스템을 만나게 된 것이다.

 

● 좌장 김만흠

뒷담화를 어찌 보면 표현의 자유와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표현의 자유 속에서 뒷담화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 성봉근

헌법 제21조 제1항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특히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는 헌법 제21조 제2항에서 허가제를 금지하도록 하여 허가제를 금지하지 않는 다른 기본권들과 구별하고 있다. 물론 표현의 자유라고 하더라도 무제한적인 것이 아니라, 헌법 제21조 제3항에서 보듯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와 같은 제3자의 이익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와 같은 공익 등 이익형량을 통하여 제한받을 수 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최대한 보장하고 예외적으로 최소한 제한하는 접근방식이 타당하다고 할 것이다.

실용주의적인 사고는 법이 현실에서 규범력과 설득력 및 문제해결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하고, 특정한 이익을 위하여 법이 봉사해서는 안 되고, 공익과 사익, 사익과 사익 간에 이익형량을 통하여 이해관계의 조절과 조화를 목표로 하는 것을 수용하여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하지만 실용주의적 사고가 심화되면 지나치게 경제적인 인간의 모습을 추구하게 되어 이기적인 각종 비방들마저 이익을 위한 정당한 행동이 될 수 있어 문제이다.

이러한 법철학적 고민들 속에서 표현의 자유와 제한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구조 속에서 주목하여야 할 것은 하버마스의 대화이론이라고 생각한다.

하버마스(Habermas)의 대화이론은 행정작용의 수단들이 정보통신력의 발달로 변화하면서 국민들을 통치의 객체로 삼아 감시하고 통제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지, 아니면 국민을 대등한 행정의 협력자로 취급하여 대화와 소통의 상대방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법철학적인 해답을 시사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근본적인 문제는 대립되는 세계들 사이에 소통이 어려운 장벽들이 존재하여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가진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타당한 방법론의 설정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 좌장 김만흠

뒷담화가 사생활 모략으로 이어져서 특히 문제가 된다. 사생활 모략에 대해 문제점을 짚어주신다면?

■ 손애경

사람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뒷담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도 뒷담화 체질에 안 맞는 사람들은 애써 뒷담화를 듣고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뒷담화에 푹 젖어있을 때가 많다.

평소에 신뢰가 두터운 사람이 하는 말은 감히 반대나 의심을 잘 하지 못하는데, 어떤 뒷담화라 해도 뒷담화를 할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게 된다. 이러한 경우에 나도 모르게 뒷담화의 생산자나 유통자가 되어 있을 때가 있다.

바로, 이 부분에서 뒷담화의 생산 유포자의 실체를 집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뒷담화를 생산 유포하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 자신들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인성이 꼭 반드시 나쁜 것도 아니고, 타인도 잘 도와주기도 하고, 사교성도 좋고 좋은 일도 나서서 잘하고 친절하고 가족들에게도 성실한 우리 일상 속 친한 친구일 수도 가족일 수도 지인일 수도 있다.

단지, 이들도 뒷담화를 단순한 흥미꺼리로 전하면서 좀더 사람들이 놀라워할 꺼리를 만들고 추론하고 유추했던 사실까지 얹어서 뒷담화를 공유함으로써 강한 연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어쩔 수 없이 뒷담화에 연대하게 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사실과 허구를 구분지어 주려 하거나, 진실 여부를 가리고자 충고를 하기 보다는, 최소한 동조를 자제하고 들어주는 정도의 배려까지만 보여주고, 특히 무엇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뒷담화 재생산의 유포자가 되지 않도록 경계함이 중요하다.

■ 정재룡

사생활 모략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사생활 보호를 천명한 헌법 17조 위반이고, 형법의 명예훼손, 국가공무원법의 임용 방해행위 및 인사에 관한 부정행위, 국가인권위원회법의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에 해당되어 가벌성이 있다. 한부모가족의 이혼이나 동거 전력을 모략하는 것은 한부모가족을 존중하도록 한 한부모가족지원법의 취지에 위배된다.

둘째,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없는 이혼이나 동거 전력이 인사 등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실적주의에 반한다. 사생활 모략으로 실력 있는 사람이 도태되고 실력보다는 인간성, 인간관계 등이 중시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도덕성이나 청렴성은 중요하지만 그저 품성 좋은 사람이라는 평판이 실력보다 더 중시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셋째, 과거에 사생활 중에 용인되던 것들이 지금은 거의 다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현재 사생활 중에 법으로 금지되지 않는 것은 이혼과 동거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혼이나 동거 전력은 당사자들에게 불행한 일인데, 그것이 편견 때문에 모략의 대상이 되는 건 문명사회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것으로서 야만적이라고 할 수 있다. 넷째, 절차적으로 볼 때도 공정성이 중요한데, 모략은 반칙을 허용하는 것으로서 공정하지 않다. 당사자에게 소명 기회도 주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다섯째, 현대는 가치의 다원화 시대이고 개인의 선택이 존중되는 시대이다. 제3자가 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없는 남의 사생활을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갈등을 유발한다.

■ 성봉근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한 다양한 ‘사회적 권력들’이 그들 간의 갈등과 대립의 구조를 뒷담화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근거가 불확실하거나 부족한 사실들에 대하여 타인에 대한 비방과 자신들의 욕구 해소를 목적으로 은폐된 힘의 우위에 의하여 해결하려는 속성과 종종 결합하게 된다.

이러한 폐쇄적인 공간은 다른 세계에 대한 전파가능성을 크든 작든 언제든지 가지고 있다. 뒷담화에서 배제되어 근거가 부족한 비방의 대상이 된 타인은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인격권과 자기방어권 등의 정당한 권리들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침해된다. 배제되는 사람없이 함께 말할 기회를 공평하고 공정하게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누구도 타인의 프라이버시를 함부로 침해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 손애경

보통은 아예 뒷담화가 습관화되어 일상이 되어버린 이들을 통해서 생산 유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들에게 있어 사람들과의 대화나, 언론매체를 통해서 쏟아지는 기사들은 한 치의 공감도 없이 단지 흥미꺼리로서의 놀이문화로 취급되기 일쑤이다. 이런 사람들과 뒷담화를 하다 보면, 자신도 언젠가 그 뒷담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들어, 거리를 두게 된다.

이러한, 뒷담화가 단순히 가벼운 험담이나 흉을 보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사실과 다른 없던 이야기까지 지어내는 순간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뒷담화는 중상모략으로 확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사실만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몇 사람 건너가는 순간, 내뱉은 말은 교묘하게 편집되어 왜곡되거나 오해의 여지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가깝지도 않은 이들이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더 리얼하고 구체적으로 그려져 유통되어진다는 점이다. 특히, 그리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일 경우에는 불이익이 있든 없든 더 적극적으로 가차없이 퍼 나르는 걸 한두 번쯤은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때 유통되는 뒷담화의 내용은 이슈화가 중요한 것일 뿐, 더 이상 가짜인지 진짜인지 중요하지 않다.

이와 같이, 허구로 이야기를 지어내 살을 붙여가면서 유통되는 뒷담화는 사회, 정치, 경제 분야 전방위로 확산되면서 가짜뉴스를 만들어 내거나, 여론을 왜곡하여 억울한 피해자를 양산, 사람의 생명까지도 앗아가는 무서운 칼날이 되기도 한다.

뒷담화를 생산해 내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이를 확인 없이 마구 유포하는 이들, 그리고 추측과 상상으로 단정지어 받아들이는 이들 모두가 뒷담화의 공범자들이라 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좋지 않은 뒷담화의 생산과 유통을 줄이기 위해 지나치게 외부로 쏠려 있던 안테나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바꿔 자신의 내면을 좀더 자세히 살피고 애정을 쏟을 수 있도록, 행복을 찾기보다는 행복을 만들어가는 방향으로 환경을 조성해 나갈 필요가 있다.

 

● 좌장 김만흠

뒷담화가 발휘하는 사회적 기능도 있을 것이다. 뒷담화가 갖는 긍정적인 사회적 기능을 짚어본다면?

■ 손애경

개인의 차원을 벗어난 뒷담화는 나라에 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온 국민이 뒷담화를 하는 때가 있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유발하라리가 저서에서 말한 뒷담화이론이 역사학적 차원에서 여실히 맞아 떨어지는 듯한 신통함을 발휘한다.

뒷담화가 단체나 기업, 심지어는 국가의 차원에서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경우에는 여론 조성, 프로파간다, 중상 모략, 언론조작 등 여러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그래서 현재 국가나 기업 단체 차원에서는 뒷담화에 대한 발화자의 신뢰가 무척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이다. 예전에는 믿을 만한 공신력 있는 매체인가. 그 이름으로 발화되는가가 기존 기라성 같았던 언론방송사들이 가진 아우라였다. 지금 그 아우라가 사라져가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뉴스기사 제목을 보는 순간 방송 언론사가 어디인지를 먼저 확인하게 되고, 기사 내용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짐작하게 된다. 그리고 거의 십중팔구는 거의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다.

이런 특징적 요소는 예전부터 있어 왔으나, 최근 들어서는 인터넷과 모바일 디바이스의 일상화로 인해, 다양한 채널을 통한 검증이 전방위로 이루어지고 있어 간혹 일어나는 뉴스 기사들의 왜곡되거나 편향된, 그리고 교묘하게 편집되어 뒷담화의 꺼리를 만들어내는 의도가 즉각적으로 드러나게 되기도 한다.

■ 박상병

정치사회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뒷담화와 모략의 심리적 동력으로 이어진다. 팩트보다 더 리얼한 뒷담화 또는 모략의 파급효과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찬성과 반대의 여론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된다. 뒷담화와 모략의 여론적 기반은 풍부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 무관심보다 더 무서운 ‘정치과잉’이 공론보다 뒷담화를 주도한다. 특히 프레임 전략과 이미지 전략으로 결판나는 한국의 선거정치는 그 부정적 산물에 다름 아니다. 정책․비전․인물 보다 담론․프레임․이미지가 유권자의 투표행태를 좌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서로 모략하고 거짓을 선동하고 헐뜯는 선거전략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 정치 뒷담화 및 모략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 국민적 신뢰가 낮은 권력이나 주도권을 뺏긴 (친)기득권 세력이 이용하려 든다는 점이다. 때문에 ‘주류로의 복귀’를 위한 담론적 포석 또는 절망적 배설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몇 개의 중요한 포인트를 연결해서 거대한 ‘부정적 스토리’를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권력에 대한 불신과 진영대결은 곧 ‘부정편향’을 폭발적으로 재생산한다. 셋째,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반응’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다. 대중적 반응은 곧 프레임과 이미지 전략의 핵심이다. 그러나 잘 쓰면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체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 성봉근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힘과 권력이 약하거나 도덕이나 법에서 당시에는 허용되지 못하는 논의와 평가들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권력이 강한 대상을 상대로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을 분출해 주는 기능이 있을 수 있다. 뒷담화가 긍정적인 기능을 발휘하려면 그 목적이 타인에 대한 근거 없는 비방이나 명예훼손 등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와 도적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결국 그 목적과 용도에 따라 뒷담화의 순기능과 역기능은 다르게 나타나게 될 것이다.

■ 손애경

뒷담화는 사회구성체에 피해를 끼치는 몰지각한 이기적인 대상자를 대다수의 시민들이 뒷담화를 공공연하게 함으로써 유사한 침해사례에 대해 예방적 차원의 자정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최근 대표적인 사례로는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을 저지하려는 사회공동체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뒷담화를 통해 억제 예방 효과를 거둔 사례를 들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공공적인 뒷담화는 사회의 분란과 갈등을 해소하는 원천적인 채널이 된다고도 볼 수 있다. 불의를 참지 못하던 시절, 정의를 위해 싸우던 시절, 대포집에서 세상 뒷담화로 안주 삼던 시절, 공공의 뒷담화는 바람을 뚫고 날아간 불화살처럼 빠르게 번져 나가는 들불로 이 땅에 민주화를 밝히는 데 기반이 되었다.

최근의 예를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촛불혁명이라든가 미국의 인종차별 시위 같은 경우처럼 개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수직적인 사회계층 계급의 문제를 단결력 강한 집단의 행동으로 표출하여 나타내기도 한다.

특히, 국가적 차원에서의 뒷담화는 대내적으로는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대중들을 상대로 현재 SNS의 파급효과를 잘 살려 결집시켜 갈 수 있는 여론의 방향 조성에 활용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으며, 정부, 기업, 단체, 지역 등 국가 공동체 내 갈등구조를 조장하는 사회 정치 경제 언론 등의 뒷담화에 대한 국민적 의식 수준을 고양시키는 것이 중요해졌다. 한편, 국가적 차원에서의 대외적 뒷담화 기능은 현재 국가간 음모론 조장과 갈등 조성 (사이버 해킹, 조직적인 댓글부대 등) 의도로 활용되고 있다.

 

● 좌장 김만흠

한국사회의 뒷담화와 음해, 모략의 문화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어떻게 건강하게 해소해나갈 수 있을까?

■ 정재룡

첫째, 공직 인사에서 평판 조회에 사생활 보고를 금지시키고 이를 위반하면 징계조치하도록 한다. 근본적으로는 국가공무원법(44조 및 45조)과 지방공무원법(42조 및 43조)을 개정하여 사생활에 관하여 보고 등을 금지시키고 이를 위반하면 형사처벌하도록 한다. 사생활에 의혹이 있을 때는 따로 공식 조사를 실시하여 문제가 드러나면 그에 합당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둘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과거 첩이 인정되던 시대의 윤리 관념으로서 지금은 시대착오적이기 때문에 이를 폐기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지금은 이혼과 동거 외에는 거의 모든 것이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이혼이나 동거 전력이 있으면 공직을 맡을 수 없다고 오해될 수 있는 윤리 관념은 옳지 않다.

셋째, 인터넷 공간에서 익명성에 의지하여 범죄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범죄가 발생하면 재발 방지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특히 최근 코로나19 이후 비접촉이 강화되어 인터넷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온택트’라는 신조어가 생겼을 정도로 온라인 시대로 가고 있다. 그에 부응하여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

넷째, 직장에서 파벌 형성을 지양해야 한다. 지연, 학연 모임을 금지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파벌이 되어 직장의 여론을 왜곡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감사 부서에서 그런 문제를 시정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 손애경

최근엔 국경의 경계가 없는 인터넷 환경 속에서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실감나는 초국가적인 플랫폼을 통해 대놓고 뒷담화를 통해 파워를 형성해가는 일인 미디어를 비롯한 인터넷 방송 콘텐츠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미디어들은 자극적인 뒷담화를 재생산하면서 가상공간에서의 그들만의 파워를 확대해가고 있다. 기존 공공 방송 언론사가 가지고 있던 역할과 파워는 개인화되고 파편화되어, 이제 더 이상 공공 언론 방송사의 성역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기존 언론매체들의 역할이 해오고 있던 환경이 붕괴되고 아우라가 사라진 덕분에, 사람들은 인터넷 SNS상에서의 뒷담화 홍수 속에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부터가 만들어진 것인지를 많은 시간을 들여 스스로 검증해야 하는 고민에 놓이게 되었다. 게다가, AI, 빅데이터, VR/AR 기반의 딥페이크(Deep Fake) 기술을 활용하여 생산되고 있는 정교하고 고도화된 가짜 콘텐츠들의 진위여부를 판단하기는 더욱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미디어 리터러시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부처 및 교육계에서는 현재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일부 인터넷을 통한 가짜뉴스나 모략들에 대하여 엄정한 처벌을 내리는 등 점점 이와 관련한 대책들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인터넷상에서의 뒷담화의 전방위적인 확산과 고도화된 모략을 통제하고 규제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확산 속도나 치명도로 볼 때 지금의 뒷담화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뒷담화가 아니다.

인터넷 환경 속 뒷담화는 코로나 바이러스급 양상을 띠고 있어서, 이제부터는 뒷담화에 대한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대놓고 떳떳하게 이야기하는 걸 뒷담화라 하지는 않지만, 현재 인터넷 환경에서의 뒷담화는 더 이상 뒤에서 수군거리는 차원을 넘어, 공개적인 담론화를 통해 미래문화 속 뒷담화를 예측할 필요성이 있다.

앞으로도 인류사와 함께 할 뒷담화는 인간을 둘러싼 공기와도 같아, 산소 같은 뒷담화의 순기능과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뒷담화의 역기능 사이에서, 선한 영향력이라는 사회 면역체계를 강화시키는 것이 신기술 환경하에서 뒷담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라 생각하며, 나아가 미래사회 인류공영을 위한 뒷담화의 진화를 위해서는 양날의 검을 다루는 지혜로움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 성봉근

사회의 공정한 룰을 만들기 위한 법과 제도를 광범위하고 세심하게 만들어 나가서 밝고 건강한 논의로 바꾸어야 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책라고 하겠다. 따라서 뒷담화 등을 한 사람들에 대한 개별적인 처벌이나 비난의 문제로 보기 보다는 헌법이 지향하는 기회 균등한 헌법국가를 구현하기 위한 헌법적인 문제에 속한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시간과 상황 및 장소 등의 변화에 부합하면서도 지적으로 보다 풍요로운 수준의 표현과 사상의 시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추가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

사상의 시장에서 하버마스의 대화이론을 법철학적 기반으로 하여 접근해 나가야 한다. 또한 어느 일방의 이익을 절대적으로 우선시하여 그렇지 않은 일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배제해서는 안되고, 상호 양보를 통하여 규범조화적으로 접근하여야 한다.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이든 이들을 규제하려고 하는 측이든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여야 한다. 비례의 원칙은 정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적합하여야 하고, 최소한의 침해를 수반하는 필요성을 충족하여야 하며, 이익형량상 상당성의 원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또한 거리의 원칙을 서로 준수하여야 한다. 표현의 자유가 남용되었는지, 아니면 표현에 대한 비판과 규제가 위법한지 등은 언론과 표현의 시장의 종류와 특성, 상황에 따라 시장의 거리를 파악하여 어떠한 규제의 종류가 제어행정의 수단으로서 적합한지 여부로 판단하게 된다. 이를 제어국가에서는 ‘거리의 원칙’(Distanzgebot; Distance Principle)이라고 한다,
또한 성숙한 담론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자율규제를 활성화하고, 외부에 의한 규제는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해 나가야 할 것이다.

■ 박상병

뒷담화와 모략에 찌든 한국사회를 바꾸려면, 정치권부터 확실하게 달라져야 한다. 승자독식의 권력구조 및 거대 양당체제를 바꾸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진영싸움은 필연적으로 적과 동지를 분리시키고 뒷담화와 모략을 양산하는 핵심 동력이다. 따라서 개헌과 권력구조 및 선거제도의 개혁이 전제돼야 한다. 다음으로는 뒷담화와 모략의 생태계를 끊어내는 각 단위에서의 자정 노력이 절실하다. 개헌 등의 구조적 혁신이 어려운 조건에서는 이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기도 하다. 그리고 법적 근거를 강화해서 허위사실․명예훼손․막말 등의 저급한 방송(유투브)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뒷받침 돼야 한다. 이를 통해 시민의 합리적 상식과 언론의 건강한 역할이 ‘공론의 장’을 주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저급한 뒷담화와 모략이 통할 수 없도록 시민과 언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이경선

뒷담화와 모략이 횡행하는 이면에는 출세와 서열 문화, 감투 욕망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사회적 성공에 대한 평가 기준 재조정과 인식 전환이 요구된다. 자전거 탄 국회의원, 농부로 돌아가는 대통령, 연금이 아니라 창업하는 장관 이런 모습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진영주의, 이너써클, 친분주의 문화가 얼마나 저급하고 값싼 행태이며 사회적 질병으로 보는 비판적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 생활적 측면에서는 앞담화. 잔잔하고 진솔한 대화 문화. 당당한 문제제기. 함께 문제제기 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행복, 낭만, 감성, 자연, 걷기, 요리, 영화비평, 작품, 아이디어, 창작, 공예, 기술, 정원, 마당이 있는 집 등 가십 문화가 확 바뀌어야 한다.

타인이 싫으면 존중하며 작별하는 법을 익히게 해야 한다. 너무 가볍고 예능적이며 시트콤같은 사회가 다시 차분해 질 필요가 있다.

수다스러움에서 진솔함으로, 호들갑에서 차분함으로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

 

● 좌장 김만흠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제에 대해 덧붙여 말씀해 주신다면?

■ 정재룡

토끼 한 마리가 도토리 나무 밑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는데 도토리 하나가 토끼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잠결에 놀란 토끼는 ‘무슨 일이 일어났구나!’ 생각하고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다른 토끼들 역시 무슨 큰 일이 일어난 줄 알고 함께 뛰기 시작했다.

뛰는 토끼 무리를 본 산 중의 다른 짐승들도 ‘무슨 변이 났구나!’ 생각하고는 덩달아 뛰었다. 그렇게 일단 뛰기 시작한 짐승들은 영문도 모르고 그 순간의 기류에 함몰되어 서로 앞서서 달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이 때 이 광경을 목격한 그 산의 짐승 중의 왕인 사자가 그들을 그대로 두면 자칫 위험한 일이 일어날 듯 느낀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이 그대로 달리면 얼마 안 가 앞에 낭떠러지가 있지 않는가!

사자는 한달음에 달려 그들 앞으로 나아가 낭떠러지 앞에서 우뚝 서서 크게 포효한 뒤 위엄있는 표정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그들은 사자 앞에서 겨우 달림을 멈추게 된다. 사자가 그 짐승들을 쳐다보며 묻는다. “너희들은 도대체 어디를 향해 그렇게 뛰느냐?” 토끼를 비롯한 짐승들은 서로를 물끄러미 번갈아 쳐다볼 뿐 말이 없었다. 이에 사자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왜 무엇을 위해 그렇게 뛰느냐?” 역시 아무도 대답할 수 없었다. 불전에 나오는 우화의 한 토막이다. 경솔함, 쏠림, 가벼움, 생각의 빈곤이 중첩된 한국사회와도 같다. 자신의 삶에 집중하고, 내면의 가치와 본질적인 가치를 중시하고, 차분하고 지적인 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그런 사회를 지향했으면 좋겠다.

■ 박상병

프라이버시와 사생활, 인격에 대한 존중 보다 상대방을 헐뜯고, 깎아내리고, 평판을 교묘하게 왜곡시키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불만과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이를 통해 서로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하는 방편으로 삼고 있는 부정적 뒷담화 문화가 한국사회의 유별난 특성으로 자리 잡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뒷담화와 음모, 모략이 분출하는 사회는 이미 치유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은 병이 든 사회다. 최악으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고, 좀 더 생산적이고 건강한 의제로 소통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좌장 김만흠

뒷담화와 모략을 큰 주제로 삼았으나, 결국 우리 한국사회의 종합적인 문제점들을 진단해본 시간이 된 것 같다. 철학이 있는 사회를 위해 계속해서 논의를 이어가 보기로 하자.

 

교수신문, 의회신문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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