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1948년 8월15일 서울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기념식은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가 이날 최초로 연주된 가운데 오전 11시20분에 시작됐다. 조선총독부가 있던 자리에서 열리는 새 나라 선포식의 단상에 대형 태극기가 걸리고, 그 중앙에 하늘색 모시 두루마기의 이승만 대통령이 앉았다. 그 옆에 맥아더 연합군 최고사령관 모습도 보였다.

정시가 되자 대회장 오세창이 “신생 정부 대한민국을 갖게 된 감격이 더할 바가 없다”는 말로 개회를 선언했다. 오세창은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 들뜬 하객들의 웅성거림이 잦아든 가운데 좌・우파 세력 모두에게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이승만이 마이크 앞으로 나가 라디오에서 수없이 들었던 그 특유의 어조로 연설을 시작했다.

“오늘 동양의 한 고대국인 대한민국 정부가 회복되어 40여년을 두고 바라며 꿈꾸고 투쟁해온 결실을 맺었습니다......”

눈비를 맞으며 40년 세월을 해외를 떠돌았던 일흔넷의 노(老) 독립지사 이승만의 연설은 문장마다 국민들의 가슴에 맺혔다. 이 연설이 무대에 올려졌던 1948년 한반도는 세계적 냉전구도의 최전선이었으며 1인당 평균소득이 50달러 안팎의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절망적인 땅이기도 했다. 자유와 민주를 지향하는 국가를 건설하는 첫걸음은 지난(至難)하기만 했다.

대한민국은 저절로 세워진 나라가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만난신고(萬難辛苦)를 물리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길을 선택해 오늘의 이 나라를 세웠다. 그리고 건국 반세기만에 대한민국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으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린 민족사의 대기적을 이룩했다.

민족사를 통틀어 처음으로 세계의 주역으로 나아갈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건국기념일’이 없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거의 유일하다. 8.15를 일제에서 해방된 날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탄생한 ‘건국의 날’로도 기념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 최고액권 화폐로 발행될 십만원권 지폐의 인물 도안으로 백범 김구선생의 초상이 거론되고 있다. 각국의 화폐도안에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 동식물, 문화유산 등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일생을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했을 뿐 아니라 해방정국에서 눈앞에 닥친 남북분단을 막기 위해 온몸을 던졌던 인물이다. 그러나 1948년 당시 백범의 ‘남북 상호의 수정과 양보로써 건설되는 통일체’의 꿈은 무망한 것이었다. 북한지역에서는 이미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라는 북한단독정부를 수립해놓고 저들만의 사회주의 헌법을 제정하고 토지개혁과 산업 국유화, 화폐개혁, 군대 양성 등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범은 이미 물 건너간 ‘남북 통일체 건설’의 꿈을 부여안은 채 ‘남한 단정수립 불가피론’을 반대하고, 유엔 감시하의 5・10총선 결과 대한민국 건국이 공포된 후로도 대한민국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비판하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끝내 인정하지 않았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옳은 길을 가야 한다’는 백범의 비장함은 물론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백범은 상황 인식에서 큰 오류를 범했다. 그의 잘못된 확신은 국가공동체를 이끄는 뛰어난 정치가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덕목인 ‘현실에 근거한 이상’의 중요성을 성찰하게 한다. 현실로부터 괴리된 이상과 명분은 공허하며 최악의 경우 위태로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고액권 화폐의 인물 도안은 백범보다는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초상이 더 맞지 않을까 싶다.

이 나라를 시장경제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건국함으로써 오늘의 번영된 대한민국을 있게 한 건국 원훈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건국 60년이라며 소리만 요란할 뿐 우리는 자랑스러운 이 나라 대한민국을 건국한 원훈들을 너무 홀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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