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행산 주필
【의회신문=정행산 주필】“‘존엄’의 우상화? 그거야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민족사(民族史)까지 훼손하고 왜곡하 는 것은 중대한 범죄임을 김정은과 북한 권력집단은 알아야 한다.”

한국전쟁 발발 65년 째 되는 날인 6월 25일을 보내고 다시 7⋅27정전협정 기념일을 맞으면서 우리가 새삼 주목해야 하는 대목은 ‘통일’이나 ‘북핵’ 말고도 또 한 가지가 있다. 다름 아닌 북한의 ‘존엄’이라는 ‘김정은의 우상화 작업’이다.

통일은 어느 날 도둑처럼 올 수도 있으나 그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다. 우리가 식량과 비료와 달러를 조공(朝貢) 바치듯 퍼주면서 화해의 손짓을 내밀면 교류가 이뤄지고 통일이 앞당겨질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그야말로 천만의 말씀이다. 북한이 “너 죽고 나도 죽겠다”는 식으로 자폭(自爆)을 각오하지 않는 한 북한 핵은 결단코 사용될 수 없다. 북한이 핵을 실제로 사용하는 날 평양을 비롯한 북한 전역은 미국의 핵폭탄에 의해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우리가 주목할 것은 김정은의 코미디 같은 행보가 그렇잖아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북한 인민들을 앞으로 어느 지경까지 몰고 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최근 들어 김정은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최고 존엄은 으레 신비한 우상으로 꾸며진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이미 ‘신인(神人)’으로 받들어졌다. 신인(神人)이란 하늘의 신(神)이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내려온 존재라는 뜻이다. 일본은 천황(天皇)을 신인으로 추앙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은 ‘영웅’이 되어 있다. ‘솔방울을 따서 던지면 수류탄이 되어 터지고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너 일본군을 무찔렀다’고 북한 인민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 북한 어린이들은 이런 같잖은 얘기를 사실로 믿고 진지하게 암송해야 한다. 북한 어린이들은 이런 헛소리를 암송하면서 “장군님이 혹시 서커스단에서 요술 부리던 삐에로 출신인가?”하는 의심 같은 것은 감히 하지도 못한다.

김정일에 대한 우상화도 김일성에 못지않다. 소련 하바로프스크 인근 비야츠코예의 한 병원에서 출생한 김정일은 북한정권에 의해 갑자기 ‘민족의 영산(靈山)인 백두산 밀영(密營)에서 하늘의 상서로운 광채가 비취는 가운데 태어난’ 것으로 바뀌었다. 본명이 김성주인 김일성의 집안은 본디 평양에서 살았으나 가세가 빈궁하여 그의 증조부인 김응우가 이평택(李平澤)이라는 지주 집안의 산소와 제각을 관리하는 묘지기 일을 얻어 지금의 만경대인 대동군 고평면으로 이사를 했다.

1866년 7월 미국 무장 상선(商船) 제네럴 셔먼호가 통상을 강요하며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 경내로 침입해오자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朴珪壽)는 철산부사 백낙연과 함께 관민을 지휘, 제네럴 셔먼호를 불태우고 승무원 23명 전원을 수장시켜 격침시켰다. 박규수는 조선 후기 실학자이자 대문장가인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손자다.

북한이 발간한 역사서들은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이 때 평양군민을 총지휘하여 셔먼호를 격침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네럴 셔먼호 격침은 신미양요(1871년 6월)의 원인이 되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당시 조혼(早婚) 풍습을 감안하여 김일성으로부터 위로 출생연도를 역산해 보면 증조부 김응우의 출생연도는 대략 1856년쯤이 된다. 그리고 1866년에 있었던 제네럴 셔먼호 격침사건 당시 1856년생인 김응우는 만 열 살이 된다.

우리 나이로 열한 살쯤의 어린아이, 그것도 비천한 집안 출신의 김응우가 평양 감영과 관군을 다 젖혀놓고 군민을 이끌어 조총(鳥銃)과 대포로 무장한 미국 무장상선 셔먼호를 격침시켰다는 것이다. 셔먼호 격침사건은 어린애들이 동네 골목에서 막대기 들고 장난치던 병정놀이가 아니다.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가 열 살 어린 나이에 군민을 이끌고 제너럴 셔먼호를 격침시킨 주인공이었다면 이는 세계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기록이 된다. 유럽의 백년전쟁에서 어린 나이의 소녀로 프랑스를 구해낸 잔 다르크는 당시 열일곱 살이었다.
우리 나이로는 열아홉이다. 열일곱 살 어린 나이의 소녀가 전쟁에서 나라를 구했다고 해서 잔 다르크는 로마 가톨릭의 성녀로 추서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는 잔 다르크를 뛰어넘는다. 그는 열 살의 나이에 관군을 제쳐두고 군민의 총지휘자가 되어 당시 최신 병기로 무장한 미국의 무장상선을 격침시키고 승무원 23명 전원을 수장시켰다지 않은가.

북한정권의 코미디 같은 역사 왜곡은 비단 제네럴 셔먼호 격침사건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 김정은의 우상화를 위해 또 어떤 코미디가 연출될지 두고 볼 일이지만, ‘존엄’의 우상화? 그거야 어쩔 수 없다 할지라도 민족사(民族史)까지 훼손하고 왜곡하는 것은 중대한 범죄임을 김정은과 북한 권력집단은 알아야 한다. 북한 권력집단과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는 지금까지 인민과 민족과 역사 앞에 엄청난 범죄를 저지를 만큼 저질렀다. 또 얼마나 더 많은 죄를 보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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