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행산 주필
【의회신문=정행산 주필】중국의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초청받은 세계 30여개 국가 귀빈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국빈으로 환대받는 오늘의 대한민국 대통령을 보면서, 문득 95년 전 외국 화물선 시체실에 몸을 숨기고 중국으로 밀항해야 했던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모습이 겹쳐진다.

일제 강점기 대륙으로 망명한 우국지사들은 1919년 4월13일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행정수반인 국무총리에 이승만을 추대했다. 그러나 이 무렵 국내외의 임시정부는 상하이임시정부 말고도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의 ‘노령임시정부’와 서울에서 수립된 한성임시정부가 또 있었다.

이처럼 국내외 여러 곳에서 임정이 수립됨에 따라 각지의 임시정부를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마침내 1919년 9월6일 한성?상하이?노령임시정부가 통합, 이승만을 초대 대통령에 추대하고 대한민국임시정부를 탄생시키기에 이른다.

당시 하와이를 근거지로 하여 독립운동을 펼치고 있던 이승만은 취임을 위해 상하이로 가야 했으나 그의 목에는 이미 일제에 의해 현상금이 걸려 있었고 일제 정보원들의 추적이 따라다녔다. 그런 이승만의 상하이행을 도와준 사람이 하와이의 미국인 친구이며 장의회사를 운영하던 윌리엄 보드윅(William Borthwick)이었다.

이승만은 여권과 비자가 없는 터라 상하이 행은 밀항을 해야만 했다. 당시 호놀룰루에서 극동아시아로 가는 모든 선박은 일본 항구를 거쳐야 했지만, 마침 캘리포니아에서 목재를 싣고 상하이로 직행하는 네덜란드 국적선의 화물선이 있었다.

보드윅의 주선으로 이승만과 임병직(林炳稷)은 가난 때문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중국인 이민자로 위장해 그 화물선 창고에 숨어 탈 수 있었다. 그들은 밤이면 창고 안에 쌓인 나무궤짝들 위에 누워 잠을 잤다. 그 많은 궤짝들이 고향에 묻히기 위해 옮겨지는 중국인 시신을 담은 관(棺)이란 사실을 안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이승만은 20여일의 항해 끝에 12월 5일 상하이 황포탄(黃浦灘) 어귀에 도착했다. 황포탄은 황푸강(黃浦江)을 끼고 있는 영국 조계지로, 유럽풍 건물들이 들어서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 외국 화물선 시체실에 숨어 밀항해야 했던 그 시절 우리는 힘없고 보잘 것 없는 식민(植民)이었다.

이제 대한민국 대통령이 중국의 '대국굴기행사' 참관을 위해 최고 국빈의 자격으로 천안문 성루 한복판에 섰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마냥 자랑스럽지만은 않은 까닭은 지난날의 그늘이 겹쳐지면서 개운찮은 부담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더러 두 눈 부릅뜨고 깨어있으라고 채근한다.

시인이자 수필가이며 상하이에서 후장대학을 다녔던 피천득은 우리 민족이 나라 잃고 천대받으며 떠돌던 당시 황포탄의 모습을 이렇게 노래했다.

'.....쫓겨 떠나온 고국을 그리면서 기억을 밟고 서성이는 곳, 한결같이 영창에 비친 소나무 그림자를 회상하면서 향수병을 달래고 있는 곳, 친구와 작별하던 가을 짙은 카페, 달밤을 달리던 마차, 목숨을 걸고 몰래 넘던 국경의 모습이 아련히 살아오는 곳, 황포탄의 모습이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의 애절한 향수를 달래주던 황포탄, 그러나 여기에도 어김없이 조선 사람들의 조국해방 투쟁은 향수병을 뒤덮는다. 은밀히 달빛을 밟으면서 상해로 잠입한 조선인 망명객들에게 향수는 언감생심,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 투철한 의기(義氣)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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