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중국과의 FTA에 주력하다 더 큰 시장을 놓쳤다
12개 태평양 연안국 경제국경 없앤 TPP, 한국만 소외

【의회신문=정행산 주필】우리 정부는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라는 이유로 한⋅중 FTA에만 정성을 쏟았을 뿐, TPP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국과의 FTA에 주력하다 더 큰 시장을 놓친 셈이다. 그런데 정작 한⋅중 FTA는 아직 국회 비준 동의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TPP는 회원국 간의 연간 무역규모가 1경2100조원(10조1800억 달러)에 달한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TPP에 뛰어들려 했지만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 남아 있고 시기도 불투명하다.        <편집자 주>

미국 애틀랜타에서 진행된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협상이 지난 10월5일 타결됨에 따라 2010년 3월 미국이 TPP에 참여해 논의를 본격화한 지 5년7개월 만에 12개 태평양 연안국의 경제국경이 사라지게 됐다. 전 세계 GDP의 40%를 아우르는 자유무역협정인 TPP 타결은 세계 1, 3위 경제 대국인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규범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협상 초기에 미온적으로 대응하다 창립국 지위를 놓쳐버린 우리나라도 TPP 가입 행보를 서두르고 있다.

▲ 10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대응방안 등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 TPP는 중국을 경제적으로 견제하는 연합체

우리 정부는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라는 이유로 한⋅중 FTA에만 정성을 쏟았을 뿐, TPP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국과의 FTA에 주력하다 더 큰 시장을 놓친 셈이다. 그런데 정작 한⋅중 FTA는 아직 국회 비준 동의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TPP는 회원국 간의 연간 무역규모가 1경2100조원(10조1800억 달러)에 달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국이 TPP에 불참하면 GDP는 0.12% 감소하고 무역수지는 연간 1억 달러 이상 악화할 것으로 예상했다.

게다가 TPP는 경제 외에 외교⋅안보⋅국방을 망라해 전방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공동규약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을 비롯한 태평양 연안 국가들이 경제문제에 앞서 주목하는 대목이 바로 이 부분이다. TPP는 사실상 중국을 경제적으로 견제하고자 하는 미⋅일 중심의 연합전선 성격을 띠고 있다.

◇ 물론 TPP가 갖는 경제적 영향력은 대단하다.

일본은 TPP에 승부수를 던져 일거에 다자간 무역체제의 허브로 부상했다. 우리가 그간 어렵게 일군 자유무역협정(FTA) 성과와 경쟁 우위를 일본은 TPP 한 방으로 따라잡게 됐다. 가뜩이나 엔저를 무기로 전면공세를 벌이는 일본 기업과 미국 시장은 물론 동남아 시장에서도 힘겨운 싸움을 해야 한다.

FTA를 통한 글로벌 경제통합 흐름에서 우리나라보다 한참 뒤처져 있던 일본은 TPP 협상이 타결되면서 단숨에 세계경제의 40%를 차지하는 경제권 위에 올라섰다. 특히 자동차 부품, 전기전자, 기계 등 우리 주력 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일본이 TPP로 관세 혜택을 받게 되면 그간 우리가 누리던 FTA 선점 효과는 유효기간이 만료된다.

그렇잖아도 최근 한국 경제 성적표는 너무 우울하다. 청년 일자리만 못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제조업 경쟁력과 역동성 자체가 떨어지고 있다. 한국경제는 국제적 불황과 국내의 더딘 체질개선이 맞물리면서 뒤늦게 긴 터널로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지금 20년 전 일본이 갔던 저성장, 장기불황을 비슷하게 쫒아가고 있다. 이 혹한기를 견뎌내기 위해 우리는 경제 근육을 다시 만들어야 하는 시점에 있다.

하지만 우리가 TPP에 가입한다고 해도 그 결과가 반드시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TPP 가입 시 농산물시장 추가개방 등 ‘비용’을 치를 수도 있다. 따라서 가입 시기와 전략을 치밀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 또한 나온다.

우리나라는 뒤늦게 TPP에 뛰어들려 했지만 미국의 대답은 협상 끝나고 보자는 것이었다. 한국이 뒤늦게 TPP에 가입하려면 까다롭고 복잡한 과정이 남아 있고 시기도 불투명하다. 미국 조야에서는 한국이 TPP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 지난 2일 참가국 대표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사진출처: 미국 무역대표부 페이스북)
◇ 세계 통상질서 선도하는‘메가(Mega) FTA’

1990년대 초부터 세계 무역정책의 주요 수단으로 FTA(자유무역협정)가 강조됐고, 최근에는 TPP(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같은 여러 국가간 ‘메가(Mega) FTA’가 세계 통상질서를 선도하고 있다. 메가 FTA가 경쟁적으로 추진되면서 세계경제 통합은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 멕시코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TPP 회원국과 이미 개별 FTA를 타결했거나 발효한 상태다. TPP의 양허(상품 관세를 일정수준 이상 올리지 않거나 특정 서비스업종을 개방하기로 한 약속) 수준이 개별 FTA와 별 차이가 없다면 관세 효과도 크지 않다. 다만 TPP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TPP 참가국에서 생산한 원⋅부자재는 자국산으로 인정해 특혜관세를 부여하는 이른바 '누적 원산지 규정'이다.

양국 FTA에서 특혜관세를 적용 받으려면 두 국가의 원재료⋅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TPP가 발효되면 예컨대 베트남에서 생산한 부품을 일본에서 조립해 미국으로 수출해도 일본은 TPP 협정이 규정한 특혜관세를 적용 받을 수 있다. 국가별로 다른 원산지 규정 때문에 발생하는 개별 FTA의 거래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누적 원산지 규정은 중간재 교역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 특히 유리한 조항이기도 하다. 먼저 자동차 부품 업종은 TPP 협상 타결로 미국 시장 등에서 일본과 한층 강도 높은 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일본산 부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2.5%)가 철폐되면 일본산 부품가격 경쟁력은 상승하고 이는 우리 기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완성차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한·미 FTA로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에 부과하는 관세가 내년부터 완전히 철폐되기 때문이다. 또 우리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미국 현지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수출 물량이 과거만큼 많지 않다

▲ 지난 8월 27일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서 전국여성농민회총엽합 주최로 열린 '농민생존권 쟁취! 신량주권 실현을 위한 전국여성농민대회' 참가자들이 TPP가압반대 우산을 쓰고 있다. 이날 여성농민들은 “밥쌀용 쌀 수입문제와 TPP와 각종 FTA 가입 추진 문제의 심각성”을 주장했다.
◇ 가입 시기와 전략 치밀하게 고민해야

가전제품 부문도 관세 철폐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는 일본 기업들에 비해 우리 기업이 불리할 수밖에 없다. 다만 휴대폰, 디스플레이 등 우리 주력 수출품목은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이미 무관세이기 때문에 TPP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다.

섬유업종에서는 우리 기업들이 이득을 볼 가능성이 높다. 미국과 일본 등 TPP 역내 국가들은 역외국인 중국보다 베트남으로부터 의류 수입량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

세계 최대 섬유⋅의류 수출국인 베트남에 많이 진출해 있는 우리 기업들은 누적 원산지 규정의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베트남에서 생산한 우리 기업의 제품을 다른 TPP 참가국에 수출할 때 관세 혜택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더욱이 베트남은 섬유 원료 대부분을 중국과 한국 등에서 조달하고 있는 만큼 우리 섬유기업들이 이를 활용한다면 혜택은 배가 될 것이다.

한편 석유화학 부문은 수출의 90% 이상을 TPP 참여국이 아닌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어쨌든 TPP는 단순한 경제협정을 넘어 미국⋅일본과 중국이 맞서는 정치⋅안보의 의미가 깔려 있다. 지금 동북아에선 한⋅중⋅일 경제협력의 필요성과 정치⋅군사적 대립이 엇갈리고 있다.

마침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중단된 지 3년 6개월 만에 서울에서 열렸다. 이와 함께 한⋅일, 한⋅중 정상회담도 각각 따로 열렸다. 하지만 동북아 정세 등 핵심 현안과 3국 간 경제협력 방안에 대한 세 나라의 입장차가 워낙 커 이 지역에서의 불안정과 불확실성이 단기간에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을 맞는 해이다. 지난 반세기의 경제성장도 따지고 보면 극일(克日)의 역사였다. 그러나 우리는 대일(對日)무역에서 반세기 동안 단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일본을 다시 철저하게 연구하고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일본을 이기고 넘어서야 한다.

TPP 협상의 세부 내용이 확정되고 각국 의회 비준을 거쳐 발효되기까지는 아직 상당한 시간이 남아 있다. TPP 협정문이 공개되면 그 내용에 대한 정밀한 분석과 함께 가입 또는 불참 시 실익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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