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합리적인 선거구 획정은 물 건너갔다
시간에 쫓겨 막판 졸속 획정안 도출 우려

▲ 여야 농어촌지방의원모임 소속 새누리당 황영철(왼쪽 앞 뒷모습),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오른쪽) 등 의원들이 '농어촌 지방 죽이는 선거구 획정 결사반대' 피켓을 들고 양당 지도부에게 "농어촌 지방 선거구 꼭 현재 상태로 유지시켜 달라"고 간절히 요구하고 있다.
【의회신문】국회가 결국 내년 총선을 위한 선거구 획정 법정시한(11월 13일)을 끝내 넘기고 말았다. 일찌감치 ‘국회’라는 존재 자체에 크게 실망하고 있는 시중 여론은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적인 반응이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지면서 내년 총선의 공정한 ‘게임의 룰’도 사라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선거구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 신인들은 이름을 알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어 애를 태우는 반면, 지명도 높은 현역 의원들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됐다. 여기에 당내 공천안 마련까지 더뎌지면서 신인들은 이중으로 시달리고 있다.

선거구 획정하랬더니 의원 정수 늘리는 쪽으로 얘기가 나오다가 들어갔고, 비례대표 숫자 문제로 국회선진화법까지 도마 위에 올렸다가 없던 일이 됐다. 지난 12일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지도부의 마지막 회동은 단 10분 만에 끝났고, 여야는 사실상 협상결렬을 선언했다.

여야의 가장 큰 쟁점은 비례대표 문제였다. 새정치연합은 지역구 수를 7석 늘리는 대신 ‘부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지금까지는 전국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방식을 채택해 오고 있으나, 새정치연합은 그 절반을 사표를 살리는 비례대표제로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새누리당은 야당에 더 유리한 비례대표제 확대 방안을 수용하는 대신 다수당의 국회 운영을 보장해달라는 차원에서 국회선진화법 개정 카드를 들고 나왔고, 새정치연합은 내부 논의 끝에 이를 수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최종 거부 쪽으로 입장을 바꾸면서 협상은 결렬되었다. 협상 결렬 직후 새누리당은 “당분간 여야 간 협상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비례대표 수 대신에 의원 정수를 늘리는 방안은 현행 의원 정수 300석을 303석으로 늘리는 방안이 검토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여야는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도 이번과 비슷한 과정을 거친 뒤 결국 의원정수를 299명에서 300명으로 늘렸다.

의원정수 확대방안이 일단 논의대상에 포함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야 대표와 지도부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려고 혈세만 축내는 의원 수 확대를 노린다”는 비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국회의원 300석, 광역의원 789석, 기초의원 2898석인 지금의 숫자도 많다”, “세금 내는 국민이 호구인가”라는 비난의 글들을 올렸고, “분란의 주범인 국회의원 숫자를 200명으로 줄이고 전체 예산도 반으로 줄이자”, “나라에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이제 어차피 합리적인 선거구 획정은 물 건너간 형국이 됐다. 여야 지도부가 합의를 도출하지 못함에 따라 선거구 획정은 19대 때처럼 선거일을 코앞에 두고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대충대충 졸속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다가 막판에 엉터리 합의를 해놓고 서로 책임회피에만 급급할 게 뻔하다. 우리 국회 하는 짓이 대부분 이 정도 수준이다.

선거구 획정의 최종 결정권이 국회에 있는 한 각 정당의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누더기 획정’의 전철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에 설치된 독립적인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선거구 조정안을 도출하기는커녕 여⋅야의 거센 입김 탓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구 획정은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인구 편차가 3대1인 현행 선거구 획정이 ‘표의 등가성’이라는 헌법 원칙에 위배된다며 최소한 2대1로 조정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어떤 지역의 국회의원은 30만 명의 유권자를 대표하고, 또 다른 지역의 국회의원은 10만 명의 유권자를 대표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실제 새누리당은 지역구를 늘리고 비례대표를 축소하자는 주장을 고집하는 반면 새정치연합은 비례대표 축소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물론 국회의원 정원이 300명으로 묶여 있는 데다 인구 기준대로라면 국회의 농어촌 대표성이 떨어지는 등의 문제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야는 마지막 국면까지 득실 계산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선거구 획정이 미뤄진 것은 각 정당의 기득권 지키기 때문이다. 선거구 획정과 관련한 정치 일정이 산적해 있다. 여야는 대승적 차원에서 기득권 유지가 아닌, 정치개혁⋅정당개혁⋅선거개혁을 위한 선거구 획정을 결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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