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드리는 고언(苦言)

▲공무원 근무평점 조작의혹 등 각종 인사부정행위로 감사원의 감사후 검찰조사가 임박한 가운데 스산한 분위가가 감돌고 있는 해남군청 전경
【의회신문=김대의 기자】올해는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다. 이른바 '민주제도의 풀뿌리'라는 지방자치제는 지난 20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서서히 주민 삶 속에 뿌리를 내려왔다.

이제 주민의 지위는 ‘통치의 객체’에서 ‘통치의 주체’로 바뀌어가고 있다. 지방행정 시스템과 주민의 의식 및 생활환경도 눈에 띄게 달라져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방자치에는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고 폐해 또한 아직 크다.

지방 토호세력과 결탁한 일부 수준 미달의 지역 정상배들이 자치단체의 수장이나 지방의회 의원이 되어 주민의 삶의 질보다는 비리와 부정을 일삼는 경우가 허다해 자질 시비와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리 전력자나 전과자도 버젓이 단체장 또는 지방의원 자리를 꿰차는 사례 또한 늘어나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의 정당 공천권을 쥐고 있는 현행 제도는 지방단체장과 지방의원들로 하여금 주민을 뒷전으로 밀어낸 채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머슴으로 만들었다.

대부분의 단체장들이 재선을 위한 '치적 쌓기'에 급급한 나머지 실속 없는 생색용·선심성 사업에 예산을 낭비하는 사례가 봇물을 이루고 있으며, 부실한 대규모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해 부채가 불어나고 있기도 하다.

개발 허가권 남발과 이에 따른 뇌물수수 비리가 증가했고, 난개발로 인한 환경파괴도 심각한 수준이 됐다. 지방공무원 승진 인사 비리도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다.

◇ 자치단체장의 지방공무원 근무평점 조작설

전남 해남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인 '해남신문'과 '해남우리신문'은 최근 해남군의 지난해 정기인사와 관련, 박철환 해남 군수의 공무원 근무평점 조작과 금품수수설 등 각종 인사부정 행위 혐의에 대해 감사원이 4개월째 감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물론 지방자치단체의 비리는 비단 해남군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해남군청의 인사부정 행위 혐의는 아직까지는 ‘혐의’일 뿐 사실 확인이 된 것은 아니다. 해남군청의 일을 굳이 거론하는 것은 직전 해남군수 두 사람이 잇달아 비리로 중도하차했고 이번에 또 군수가 인사부정 혐의에 휩쓸리고 있어 우려되는 바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남군청 인사부정 혐의를 한 예로 들면서 우리 지방자치단체의 명암(明暗)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해남신문'과 '해남우리신문'은 보도를 통해 박철환 군수가 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군수 직을 박탈당할 수도 있는 위기에 몰리자 임기를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감사원의 수사 여부를 관할 검찰청에 의뢰해 수사를 받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소문도 함께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들 신문들은 '일각에서는 박 군수의 이 같은 돌파구 마련 시도에 대해 지역 내 인맥을 이용, 축소 수사를 통해 군수 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다는 얘기도 없지 않다'는 요지로 보도하고 있다.

또한 '깨끗한 해남 만들기 범군민운동본부' 등 이 지역의 몇몇 시민사회단체들은 '공정성이 실종된 해남군 인사행정, 물 타기 여론 조성하는 지방언론, 감사원은 또 봐주기 감사했는가'라는 제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운동본부 등은 성명서를 통해 "지난 7월 초 지방의 모 방송사에서 해남군 인사비리에 대한 감사원 감사 결과 뚜렷한 범죄행위가 적발되지 않았다는 식의 보도를 했다"고 밝히면서 "감사원의 늑장 감사 결과 발표와 지방방송의 별일 아니라는 식의 물 타기, 여론조작 의혹 보도는 해남군민들을 또 한 번 분노케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성명서는 "축소, 면죄부, 봐주기 감사라는 의혹을 받지 않도록 감사원의 엄정하고 철저한 감사를 촉구하며 감사원은 민선자치제 실시 후 만연하고 있는 공무원 근무평점 조작으로 인한 인사부정 행위 척결을 위해 해남군 근무평점 조작 감사 결과를 조속히 발표하고 관련자는 사법당국에 고발조치하라"고 촉구했다.

'해남신문'과 '해남우리신문' 및 '운동본부' 등 시민사회단체들의 이와 같은 박 군수의 직권남용 및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와 이에 따른 뇌물수수 혐의 기사·성명서 등은 현재로서는 지역에서 떠돌고 있는 '소문'에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박 군수의 비리혐의가 사실인지, 헛소문인지는 ‘현재 진행 중’이라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와 검찰의 수사 결과가 나와 봐야 알 수 있을 뿐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 검찰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권한을 남용한 공직자의 비리를 발본색원(拔本塞源) 해야한다.
◇직권남용 등 비리혐의 사실여부는 미지수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의 행정 수장인 군수의 이 같은 혐의가 설령 근거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런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해남군청 공무원들의 분위기는 술렁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군 행정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역 자치행정 수장의 평소 자기관리가 엄격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중요하다.

해남군은 지난 민선 4기 5·31 지방선거를 통해 당선된 박희현 전 군수가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되어 징역 4년의 실형과 함께 추징금 4천만 원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된데 이어 2007년 12월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된 김충식 전 군수마저 지역 조명업체로부터 1억 9천여만 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 벌금 1억9천여만 원의 형을 선고받고 군수 직에서 하차한 바 있다.

2008년 1월 전북 부안군 부안군수(김호수)는 인사담당 공무원들에게 6급 이하 공무원들의 근무평정과 서열 등을 조작하도록 지시해 인사서류를 허위로 작성하게 하고 특정 공무원들을 사무관으로 승진하게 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군청 공무원들의 근무평점과 서열 등을 임의로 변경하고 인사 관련 서류를 은닉한 혐의(허위공문서작성·위계공무집행방해·공용서류은닉 등) 등으로 기소된 김 전 군수에게 징역 1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 같은 단체장의 연이은 중도하차는 지역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할 뿐 아니라 재·보궐 선거에 따른 민심 이반과 분열, 단체장 부재에 따른 행정공백과 수억 수십억 원에 이르는 선거비용의 낭비 등을 초래해 지방자치제도의 무용론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또다시 박철환 군수마저도 비위로 인해 불명예스러운 일을 겪지 않을까 하는 일부 해남군민들의 우려는 어쩌면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피해의식의 표출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지방언론보도가 사실로 확인 된다면 검찰은 조속히 진실한 수사가 되어 군민들의 들끓은 민심을 잠재우고 알권리를 찾아야할 것이다.

어떻든, 이처럼 지역 주민들에게 걱정과 부담을 안기게 된 지방자치단체장은 비리 혐의가 설령 사실이 아니고 결백하다 할지라도 그 사실 여부를 떠나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고 몸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 목민관은 민초 한 사람의 숨죽인 신음조차도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의 경구를 기억해야 한다.

◇지방의회·지역언론도 본연의 기능 못해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해남군보다 훨씬 더한 불협화음과 폐해가 상존하는 지역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유권자인 주민들이 지역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을 선택할 때 대부분 후보 검증 없이 투표할 뿐 아니라 지방정치인이나 지방단체장을 감시하지 않은 관행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내가 이 지역의 주인'이란 자치정신을 갖고 도덕성·인품·능력을 철저히 검증하면서 선택해야 한다. 지역 단체장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은 지방자치제도 무용론의 핵심이 주민 여론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지방자치의 위기를 지방자치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 언론도 보다 발전된 지방자치 시대를 열기 위해 주어진 역할과 스스로의 존재 가치에 대해 고민해볼 시점이 됐다. 지역 언론은 지방행정이나 지역의회를 건전하고 성실한 자세로 정의롭게 감시하고 견제함으로써 지역공동체를 강화시키고 민·관 관계를 보다 긴밀하게 하는 커뮤니티(공동참여) 통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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